[소설]8월의 저편 181…전안례(奠雁禮) 3

  • 입력 2002년 11월 25일 18시 16분


신부의 어머니와 네 명의 언니들과 여자 친척들은 각기 일을 나누어 친영(親迎) 준비를 하고 있다. 마당의 정남향에 대례상이 놓이고 상 뒤에는 모란 병풍이 세워졌다.

상의 동쪽 신랑 측에는 팥을 가득 담은 꽃병, 서쪽 신부 측에는 깨를 절반 정도 담은 꽃병이 놓여 있고, 각각에 치자나무, 사철나무, 대나무 가지가 꽂혀 있다. 가래떡으로 만든 용떡 두 개의 머리에는 껍질을 벗긴 밤과 대추가 끼여 있고, 꿀을 묻혀 깨를 뿌린 대추, 청홍색 실타래, 촛대가 둘, 쌀을 담은 보시기도 놓여 있다. 빨간 보자기에 싸인 닭 한 쌍도 올려져 있는데, 꼬꼬댁 꼬꼬, 꼬기오 꼬꼬 하며 이따금 고개를 움직여 사방을 돌아보고 있다.

새가 똥을 떨어뜨리거나 새 그림자가 어리면 불길하다는 말이 있는 탓에 대례상 주위에 천막이 처져 있다.

인희가 신랑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이헌루 조씨네 집으로 달려가 친영 준비가 다 끝났다고 알리자, 온 얼굴에 먹칠을 한 함진애비가 보석과 비단과 노리개가 들어 있는 함을 지고 신부 집 문을 들어섰다.

신부의 아버지 재식이 나와 맞이하며 “애 많이 썼소이다, 애 많이 썼어”라며 머리를 숙였지만 함진애비는 “춤이라도 한 바탕 춰야지”라며 좀처럼 함을 건네려 하지 않는다.

신부의 어머니 완선이 방문주와 쇠고기찜과 한과 사과 곶감 등을 상에 차려 들고 나오자, 함진애비는 그제야 간신히 함을 건네며, “신랑,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마당에 깔린 돗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재식은 함을 상에 올려놓고 북쪽을 향해 절을 네 번 한 후 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인혜야, 가서 잘 살거라” 재식은 막내딸에게 말했다.

“네” 인혜는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마(下馬)!” 홀재비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홀기의 첫 항목을 읽었다.

인혜는 눈을 감고, 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고 비학 무늬 흉배에 각대를 두르고 검정 목화를 신은 우철이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자 친척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수수와 재를 뿌리며 귀신을 쫓는 모습을 떠올렸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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