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존 그리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7시 22분


◇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존 그리샴 지음 최수민 옮김/253쪽 7500원 북@북스

존 그리샴 소설답지 않게 법정도 나오지 않고 범죄도 없고 추리패턴은 (혹자는 추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색다른데도, 읽기 시작한 뒤 스무 번 정도 깔깔거리고 나니 맨 끝장이었다. 표지는 두껍지만 짧은 분량이고, 존 그리샴 소설이 워낙 가독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미국인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인의 설날 더하기 추석 더하기 무슨 잔치에 해당하는, 10여일 간에 걸치는 대행사인 모양이다. 끔찍한 명절을 건너 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끔찍한 크리스마스를 건너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 미국인 루터에 동감할 것이다.

용감한 루터는 아내를 설득하여 크리마스 건너뛰기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트리를 사지 않고, 기부금을 내지 않고, 파티를 계획하지 않고, 카드와 연하장도 준비하지 않고, 지붕 굴뚝에 눈사람도 매달지 않고, 드디어 오늘은 이브!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이며 유람선을 타고 떠나게 된다.

그러나 루터 부부는 공동체(교회, 마을, 직장 등등)의 일원이었다. 루터의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야 말겠다는 개인적인 의지는 공동체의 조직적인 의지와 부닥치며 숱한 우여곡절을 양산해낸다. 즉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기인 것이다.

독자가 ‘이렇게 결국 성공한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할 때, 그리샴답게 전화벨을 울려준다. 루터 부부의 딸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돌아온다는 신호! 성공을 눈앞에 두었던 루터 부부의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순식간에 ‘준비하기’로 바뀐다. 여섯 시간 안에 트리를 만들고 파티 준비를 마치고 지붕 굴뚝에 눈사람을 매달아야 하는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한 그 일에, 루터 부부는 최선을 다한다. 죽을 각오로!

지붕굴뚝에 눈사람을 매달러 올라갔던 루터는 굴러 떨어진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대신, 지붕 전깃줄에 거꾸로 매달린 신세가 된 루터. 그런 루터를, 루터가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기 위해서 싸워왔던 적들(공동체)이 둘러싼다. 루터의 적들은 순식간에 루터의 동지로 돌변하여 루터의 집을 훌륭한 파티장으로 만들어버린다. 공동체는 루터의 딸을 맞아 전에 없이 화려한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시작한다. 미국식 해피엔딩 혹은 통속적인 수법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는 결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과녁이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벗어나려는 개체의 의지에 관한 것이라면 좀 다르게 말할 수도 있겠다. 공동체와 개체는, 조직과 개인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때로는 형식적으로 협력하고, 때로는 증오하고, 때로는 진정으로 화합하기도 하는, 그러나 어쨌든 계속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그런 아이러니컬한 관계다. 한 시간 전 만해도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인, 마을 공동체가 모두 참여한 갑작스러운 루터네집의 이브 파티는, 그러한 공동체와 개체(조직과 개인, 집단과 구성원)의 아이러니를 희극적으로 은유하는 멋진 장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문체에 대해서 특별히 덧붙이고 싶다. 존 그리샴의 가독성 높은 간결체는 법정을 벗어나면서 정확성과 과학성을 떨어낸 대신 패러독스와 유머를 장착했다. 짧은 문장 하나 하나가 마음을 찌른다. 그런데 번역 소설을 읽고 문체에 대해서 감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한국땅에서 매우 훌륭한 번역자와 만난 게 분명하다.

김 종 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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