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쁜 소문

  • 입력 2002년 11월 8일 18시 36분


재일교포 작가 현월(오른쪽 사진)
재일교포 작가 현월(오른쪽 사진)
◇나쁜 소문 / 현월 지음 / 신은주 홍순애 옮김 / 232쪽 9000원 / 문학동네

‘호사불문출 악사행천리(好事不門出 惡事行千里·좋은 소문은 문 밖에 나가지 않으나 나쁜 소문은 천 리 밖에까지 간다)’라고 했다.

“이거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야 돼”로 시작하는 은밀한 이야기들. 거기서부터 범인(凡人)들에 내재된 보편적인 악의가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비판과 험담이라는 검은 점으로 점묘되기 마련인 ‘소문’은 한 인간의 존재를 멋대로 규정해 버리기에 충분하다.

‘그 남자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뼈다귀라고 불렸고 나쁜 소문이 많기로 유명했다. (…) 사실 그는 평소에는 아주 온순했다. 그러나 뼈다귀가 한 짓이라고 떠도는 소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되도록 그에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다. (…) 따로 범인이 밝혀진 사건인데도, 뼈다귀의 그림자가 달라붙은 채 안 떨어져 두려움에 술이 확 깨고 마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폭력’ 소문. 소문이 개인의 운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쁜 소문’은 보여준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표제작 ‘나쁜 소문’의 첫 번째 장에 그려진, ‘뼈다귀’라 불리는 인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나머지 150여장에 걸쳐 벌어지는 비참한 폭력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야기는 22년 전 일어난 ‘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전지적 화자의 목소리와 ‘뼈다귀’의 조카 류이치의 말을 통해 한발씩 한발씩 나아간다. ‘소문의 회오리’와 10대 매매춘, 증오와 복수, 광기어린 폭력으로 가득 찬 오사카의 재일 한국인 마을은 곧 신문과 TV에서 매일 접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면이 한데 엉겨 굳어진 모습에 다름 아니다.

신문을 배달하는 ‘뼈다귀’의 중학생 여동생을 협박, 동네 어른들의 욕정의 배출처로 삼는 양씨 형제는 이 ‘사업’으로 죄책감 없이 돈벌이를 한다. 건어물상에서 참기름을 외상으로 사려다 거절당한 뼈다귀는 보복으로 닭대가리를 건어물상 우편물 투입구에 처넣는다. 양씨 형제의 여동생 가나코는 오빠의 칼에 무자비하게 난자당한 건달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정기적으로 바친다. 양씨 형제는 여동생이 뼈다귀의 조카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못마땅하다. 뼈다귀는 가나코를 빈터로 끌고 가 그의 몸에 유리병을 넣고 깨뜨린다.

지난주 내한했던 재일교포 작가 현월(玄月·36)은 “죽음의 에너지를 내포한 등장인물을 설정하면서 연쇄적인 폭력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 독자들이 폭력적인 장면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 궁금하다”고 했다. “실제 사회에서는 폭력이 횡행하며,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라 해도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소설의 경우도 같다. 등장인물들이 독자적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부딪치기 마련이고 따라서 폭력장면을 쓰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편 ‘나쁜 소문’은 ‘그늘의 집’으로 2000년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작가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 같은 제목의 소설집 ‘나쁜 소문’에는 연작의 성격을 띤 ‘땅거미’가 함께 수록됐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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