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정권말 총파업의 ´셈법´

  • 입력 2002년 11월 6일 18시 05분


8만여명이 참가한 민주노총의 시한부 총파업은 끝났지만 경제적 손실과 그 후유증은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전국에서 2만여명이 참가한 사상 초유의 ‘공무원 연가파업’은 공직사회의 기강을 흔들며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길 전망이다.

민주노총, 그리고 강성노선을 걷는 가칭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주5일 근무제를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공무원노동조합의 쟁점사항을 포함한 공무원노동조합법안 등 이른바 ‘3대 악법’의 정기국회 강행처리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파업을 주도했다.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춰 섰던 기업들은 수백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공무원 권위 스스로 포기▼

올해는 정기국회가 8일로 끝날 예정이어서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들 법안의 국회통과는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해도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총과 전공노가 정치성 짙은 불법파업도 불사하고 나선 것은 근로조건의 악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라기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노조의 목소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압박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대선을 40여일 앞둔 지금,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정쟁으로 우리 사회가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무원 조직이 줄서기로 흔들리기 쉬운 때다. 공무원노조마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업무를 뒤로 제쳐놓고 투쟁에 나서는 것은 안정을 추구하는 일반국민에게 집단이기주의로 비치기 십상이다.

공무원도 정신적 근로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부름받은 특별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일반기업체의 근로자들과 같다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국가생활은 가정·교회·지역사회 같은 공동체 생활보다 더 복잡하고 그만큼 갈등요인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을 통해 국가는 이 같은 갈등을 최소화하고 합리적·합법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간다. 공무원 조직의 기강과 질서가 흔들리면 시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이 자기 분수와 책임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법이 아니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악행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들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청지기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공무원들의 직무상 권한도 그 연원을 국민의 위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주인인 국민을 잘 섬기는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성실·친절·공정·청렴·자기희생·품위와 같은 덕목이 공무원들의 언행 속에 항시 배어 있을수록 좋다. 바로 이런 공무원상 때문에 국민 각자는 공무원의 선한 청지기활동과 그 권위에 순복하게 된다.

만약 공무원들이 이런 권위의 옷을 벗어던지고 단순한 임금노동자 차원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불행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미 노동선진국들도 공무원 조직에 대해 단순 임금노동자들과 다른 특별한 요구와 기대를 하고 있고, 그에 비례해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 같은 것에 제한을 두고 있다.

지금은 공무원상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결정할 중대국면에 처했다고 본다. 정부는 연가투쟁에 참여한 공무원들에 대해 중징계를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라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불법파업과 결연히 맞서 질서를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체 공무원들의 이러한 불법파업에 대한 대처에서 정부와 공동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공무원의 표와 지역 유권자들의 취향을 살펴 시의에 편승하는 것은 자기 본분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불법파업 맞서 질서 세워야▼

대선 정국을 맞이해 집단민원과 집단이기주의가 봇물처럼 터질 전망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권이 긴 안목을 갖고 ‘옳은 것은 옳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확실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도 통합된 사회체계의 일부라는 의식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노사(勞使)와 노정(勞政)이 대화로 풀 수 있는 것은 대화로 풀어가면서 함께 걸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정치적 혼란기일수록 국민정서는 안정을 희구한다는 사실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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