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섹스 중독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04분


정말 한국인은 섹스광(狂)인가?

필리핀의 17세 소녀 안젤라의 절규가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는 경기 동두천시의 한 윤락업소에 갇혀 눈물을 흘리면서 일기장에 ‘그들(한국인)은 모두 섹스 마니아’라고 썼다. 많은 사람은 이번 일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우려가 더 우려된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의 시선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성(性)이라는 면에서 병든 사회이고, 성적 일탈은 일부 ‘째마리(사람이나 물건 중 가장 못된 찌꺼기)’들만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 너무 단정적일까.

여하튼 의학적으로 성과 관련된 정신질환에는 성도착증과 섹스중독증이 있다.

성도착증에는 △미성년자와의 성행위에 몰입하는 페도필리아 △남의 은밀한 생활을 엿보는 관음증 △버스나 지하철에서 남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비는 접촉도착증 △이성의 속옷이나 스타킹 등을 모으는 페티시즘 등이 있다.

안젤라의 눈에는 아마도 한국인이 성도착증보다는 섹스중독증 환자들로 비친 것 같다. 섹스중독증은 성욕과잉증으로도 불리는데 환자는 들키면 망신인 줄 알면서도 외도에 빠지며 외도 후 성적 죄의식을 느끼면서 그칠 수 없게 된다.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섹스 중독이 마약 도박 알코올 중독과 같은 범주에 든다는 가설이다.

이를 주장하는 의학자들은 “모든 중독은 뇌의 가장자리계(변연계)가 고장나 쾌락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서 “선천적으로 각종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 있는데 도화선 역할을 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도박, 술, 마약, 게임, 섹스 등에 선택적으로 중독된다”고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섹스 중독이 별도의 질환이 아니고 정서불안, 우울증 등을 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가설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조직이나 사회도 정신의 건강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회적으로 섹스 중독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음성적 접대문화나 함께 일탈행위를 하면서 동질의식을 느끼는 패거리 문화 등 다양한 문화 코드가 똬리 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해 발표한 ‘인신 매매보고서’에서 한국이 최하위인 ‘3등급’에 분류되자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이번 ‘안젤라 사건’에서도 많은 사람이 외국의 시각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1998년 미국에서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중독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자 어느 주부가 “한국에서는 보통 남성의 모습인데, 무슨 섹스 중독이냐”고 말했던 것이 아직까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우리 자신,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제대로 진단하고 치유해야 한다.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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