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시대 어떻게 할것인가]노동-복지 종합고려 새 정책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11분


자녀를 적게 낳는 추세가 완전히 정착되고 있다. 1960년대에 6.0명이던 국내 출산율(15∼49세의 임신 가능 여성이 낳는 자녀 수)이 지난해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인 1.3명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저출산율이 노동력 부족과 고령인구 부양비 증가 등의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새 인구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두 명은 싫어요’〓지난 추석 연휴 때 시댁을 찾은 주부 한모씨(32)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아이를 하나 더 낳으라는 시부모의 권유가 발단이었다.

한씨의 시부모는 3남1녀를 모두 출가시켰는데 장남을 제외한 세 자녀가 모두 아들 또는 딸 하나만 낳고 둘째아이를 갖지 않는 데 불만이었다.

전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시부모가 “양육비와 교육비를 모두 대 줄 테니 최소한 하나씩 더 낳으라”고 말하자 차남인 한씨의 남편이 흔들렸다. 그러나 한씨가 집에 돌아와 “둘째아이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잘라 말하면서 실랑이가 시작된 것.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출생아는 55만7000명으로 2000년보다 8만명이 줄었다.

지난해 출산율은 1.3명. 미국(2.13명) 프랑스(1.89명)는 물론이고 저출산율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는 영국(1.64명)이나 일본(1.33명)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데 미국과 영국의 경우 100여년이 걸린 것과 달리 한국은 5, 6명이던 출산율이 2명 이하로 떨어지는 데 30년이 채 안 걸렸다.

▽왜 적게 낳는가〓출산율이 낮아진 이유는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15∼49세 기혼 부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에 따르면 1991년에는 90.3%가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1997년 73.7%로, 2000년 58.1%로 크게 줄었다.

반면에 반드시 자녀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여성의 비율이 1991년 8.5%에서 2000년 41.5%로 늘었다. 전에는 가계 계승과 노후에 부양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자녀를 중요시했지만 부부 중심, 여성 위주의 가족 생활이 심화되면서 자녀관이 달라진 것.

또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독신, 이혼, 별거, 낙태가 증가하는 현상도 저출산율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1960년에 21.6세였으나 2000년에 26.5%로 높아졌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은 전체의 39%에 이른다.

최근의 저출산율은 이처럼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사회적 흐름이라 피임 확대와 저출산 가정에 대한 지원 등 정부의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으로 출산율이 낮아졌던 60, 70년대와 달리 정부 개입으로 출산율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과 대책〓일부에서는 2000년의 출산율(1.47명)이 1년 전(1.42명)보다 약간 높아진 점을 들어 저출산현상이 고착됐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金勝權) 박사는 “2000년 출산율이 다소 높아진 이유는 외환위기로 결혼 및 출산이 조금 늦춰졌다가 다시 회복됐기 때문이지, 출산율이 높아지는 추세로 바뀐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새 천년의 시작인 2000년에 자녀를 낳으려고 계획적으로 출산을 미룬 사례도 많다는 것.

전문가들은 출산율이 2.1명을 유지해야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 출산력’이 확보된다고 보고 있다.

출산율이 여기에 못 미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고령인구 급증에 따른 복지 부담이 증가한다. 또 아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남녀 성비가 더욱 균형을 잃는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96년부터 인구 증가 억제정책을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구 피임수술 지원(연간 2500여명)도 내년부터 완전히 없어진다.

한국이 선진국형 저출산시대로 확실히 들어섰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는 내년 6월 전문기관의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각 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인구정책의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정부 新정책 방향은▼

정부의 신(新) 인구정책은 내년 상반기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뒤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겠지만 출산수당을 지급하고 보육시설을 늘리는 등 출산 장려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金勝權) 박사팀은 지난해 연말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출산력 저하를 막기 위해 출산수당과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고 아동보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현상이 계속되면 노동력 부족,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복지 부담, 출생 성비 불균형 등의 문제가 예상돼 인구증가 억제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인구문제연구소 박은태(朴恩台) 소장도 “선진국에서 100년 동안 서서히 이뤄진 저출산율 정착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20년 만에 급속히 이뤄졌으므로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산 장려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의 이시백(李時伯·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회장은 “고도 기술사회인 21세기에는 ‘머릿수’가 아니라 노동 및 기술력의 질이 중요하다”며 “저출산이 국가 발전에 저해되므로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더라도 실제 인구가 감소하는 데는 60∼65년가량이 걸리며 고령화는 출산 장려를 강조하는 인구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

그는 앞으로 여성과 외국에서 수입되는 인력의 경제활동 참가가 더욱 늘고 남북이 통일되면 오히려 잉여 노동력이 생길 가능성이 높으므로 출산 장려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국토 면적이 좁고 부존자원이 부족하며 인구밀도가 세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당분간 저출산 추세를 그대로 놔둬도 된다”고 주장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외국의 출산장려정책▼

‘능력이 되면 세 자녀 이상을 가져라.’

싱가포르 정부가 1987년 출산억제 정책을 없애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전에는 ‘두 자녀에서 중지’라는 구호가 말해 주듯 인구가 늘어나지 못하도록 막았으나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자 이같이 출산 장려로 돌아선 것.

미혼 남녀의 결혼을 권장하고 세 자녀 이상을 갖도록 권장하는 이 정책에 따라 세금 감면, 양육 보조금 지급, 주택분양 우선권 등의 혜택이 생기자 1.6명이던 출산율이 2년 만에 1.87명으로 높아졌다.

유엔이 1989년 세계 각 국의 저출산율 및 인구증가 둔화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많은 국가가 우려를 나타내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적극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썼다.

자녀를 낳으면 산전 수당과 모성 수당을, 2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면 16세가 될 때까지 가족수당을 지급하고 소득 수준과 자녀 수에 따라 주택수당을 줬다.

일본의 경우 80년대부터 저출산 현상이 시작됐으나 정부가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다가 89년 당시 출산율이 1.57명으로 낮아지는 이른바 ‘1.57쇼크’를 계기로 이듬해에 관련 부처간 협의체를 만들었다.

이어 91년에는 ‘육아휴직법’을 만들어 출산 후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아동수당(5000∼1만엔) 지급 대상을 종전의 2자녀 이상에서 1자녀 이상으로 늘렸다. 심야시간과 휴일에 어린이를 돌보는 보육시설도 확대했다.

3년 뒤에는 ‘에인절 플랜’을 통해 도시지역 보육시설을 더 확충하고 초등학교의 방과후 보호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통해 출산을 장려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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