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인물]‘…세종의 번뇌’ 책펴낸 이석제 원장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00분


“세종대왕도 비만환자였을 가능성이 높아요. 세종실록에는 ‘몸이 비중(肥重)하니’ ‘주상의 몸이 너무 무거우니’ ‘몸이 날로 비대해’ 등의 표현이 곳곳에 나와 있거든요.”

외과 전문의가 세종실록 국역본을 새롭게 해석한 책 ‘나라와 백성 향한 세종의 번뇌’를 최근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이석제 원장(54·사진)이 바로 화제의 인물. 지금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의원명은 ‘연세 세종의원’.

“세종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한글창제 등의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지 궁금했어요.”

출간 이유는 예상밖으로 단순하다. 정사(正史)는 업적에 치중해 과정을 누락하거나 세종이 앓은 질병을 오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지적. 그는 최근 10년 동안 진료를 마친 뒤 400∼500쪽 19권 분량의 세종실록 국역본과 원문, 옥편을 뒤지며 ‘세종의 질병’을 추적했다.

이 원장이 대표적인 오역이라고 말하는 질환이 임질(淋疾). 실록 곳곳에 임질에 대한 언급이 있어 세종이 문란한 성생활로 성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원장은 ‘조금이라도 말하거나 움직이거나 성질 내면 찌르는 듯이 아픈 증세가 발작한다’ ‘등에 부종(浮腫)으로 아픈 적이 오래다’ 등의 실록 내용을 근거로 세종이 앓은 임질은 지금의 성병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실록에 나오는 임질 증세가 풍질(風疾·신경통)과 비슷하고 ‘물방울 떨어질 림(淋)’자의 삼수변이 수포를 의미한다고 추정했을 때 대상포진이 아닌가 합니다.”

대상포진은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근에 숨어 있다가 육체 및 정신 피로가 가중됐을 때 수포와 심한 통증을 일으키며 나타나는 질환.

이 원장이 적시한 세종의 질병은 비만과 대상포진 이외에 안질과 이질, 요통 등 모두 10가지. 그는 “세종이 노년에 안질(눈병)을 앓았을지라도 이 때문에 한글 창제가 다른 사람(집현전 학자)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도 틀릴 수 있다”며 “실록에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이 정식 판매될지는 미지수. 현재 200부를 찍어 지인에게 선물로 나눠주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그는 오해를 살까봐 책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 보낸다.

‘저는 전주 이씨(李氏)가 아닙니다. 서림 이가(李家)입니다.’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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