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나노시대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33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바이올린의 크기를 상상해 보자.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만든 길이 0.01㎜짜리로 적혈구 세포의 지름과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이 바이올린의 줄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각각 50㎚(나노미터). 여기서 1㎚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대략 10만분의 1에 해당한다. 1㎝(100분의 1m), 1㎜(1000분의 1m), 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보다 작다. 1㎛의 1000분의 1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체의 내용을 못의 머리부분에 다 써넣으려면 글자가 이만큼 작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란 난쟁이를 뜻한다. 여기서 유래한 나노(nano)라는 말은 인간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작은 세계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나노기술이 발달되면 숯을 분해해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의 결정체인데 숯도 탄소이므로 숯의 원자를 다이아몬드처럼 배열하면 인공 다이아몬드가 되기 때문이다. 나노기술이 정보기술에 적용되면 손목시계만 한 슈퍼컴퓨터의 개발이 가능하고, 의학분야에선 암과 에이즈 등 불치병의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하지만 잘못하면 원자탄 제조기술처럼 인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악마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들도 있다.

▷과학자들은 20세기를 마이크로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나노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나노기술은 미래의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것이다. 선진국들이 나노기술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려고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나노기술개발전략을 통해 2001년부터 매년 4억달러 이상의 연구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일본도 앞으로 5년간 나노연구에 24조엔을 투자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유럽과 독일은 물론 중국 호주에서도 나노 열풍이 불고 있다. 왜 그럴까. 경량화 소형화 그리고 대용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노기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나노기술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포항공대 김광수 교수팀은 세계에서 가장 가는 직경 0.4㎚의 금속선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다른 대학에서는 나노급 입자제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90나노 공정기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최근에 개발된 512메가D램 반도체회로의 선폭이 120㎚이므로 90나노 기술은 이보다 더 앞서간 것이다. 고성능 컴퓨터를 만드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수준은 앞으로 펼쳐질 본격적 나노시대를 여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