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독자인권위 좌담]“추적보도 통해 유해제품명 밝혔어야”

  • 입력 2002년 9월 13일 18시 06분


독자인권위원들이 '죽염파동과 유해제품명 공개'를 주제로 좌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왕 위원, 이용훈 위원장, 김영석 위원. - 김종하기자
독자인권위원들이 '죽염파동과 유해제품명 공개'를 주제로 좌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왕 위원, 이용훈 위원장, 김영석 위원. - 김종하기자
《12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본보 독자인권위원회(POC·Press Oversight Committee) 제7차 정기회의는 최근 시중의 상당수 구운소금과 죽염에서 다이옥신이 다량 검출됐으나 유해제품이 실명으로 공개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항의가 쏟아진 것과 관련, ‘죽염파동과 유해제품명 공개’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독자인권위원들은 8월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구운소금과 죽염의 다이옥신 다량검출 사실을 발표하면서 유해제품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감독기관의 책임있는 행정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언론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보도해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청은 유해제품을 실명으로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시중의 160여개 전품목 가운데 24개만을 검사했기 때문에 실명공개시 업체간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김영석 위원〓그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식품안전성 검사를 할 때 반드시 시중에 유통되는 전품목을 대상으로 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객관적인 조사대상 선정, 과학적인 조사방법, 투명한 검증과정 등을 거쳤다면 문제가 된 유해제품의 실명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감독기관의 책임있는 발표를 통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이용훈 위원장〓식약청이 검사대상으로 삼은 24개 제품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6개가 유해한 것으로 드러난 상태라면 유통중인 나머지 전품목을 신속하게 수거해 모두 조사를 실시한 뒤 제품별 유무해 여부를 명쾌하게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래야 소비자도 보호하고 양질의 제품을 만드는 업체도 피해를 안볼 수 있겠지요. 식약청의 이번 발표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으로서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종왕 위원〓식약청은 미국의 식품의약국(FDA) 같은 기구인데 그만한 권위가 있다면 조사결과를 당당하게 발표하고 혹시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죽염파동은 그 여파가 아직도 진행중인 사안으로 봅니다. 그런 만큼 식약청은 지금이라도 전품목에 대한 조사를 투명하게 실시해서 그 결과를 실명으로 밝혀 국민의 건강권과 좋은 제품을 만드는 업체의 재산권을 함께 지켜줘야 합니다.

-다이옥신 허용치에 관한 국내법규가 미비한 상태여서 유해품목 제조업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고 그래서 실명 공개도 어렵다고 볼 수 있나요.

▽이종왕〓식품위생법에 허용치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세계보건기구(WHO)의 다이옥신 잔류량 기준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는 만큼 유해제품을 실명으로 밝히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언론도 이번 죽염파동과 관련해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용훈〓식품안전성에 관한 문제는 파문이 크기 때문에 언론의 입장에서도 신중하게 판단해 보도해야하고 그만큼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의 구운소금과 죽염문제는 먼저 식약청이 보인 책임회피적인 태도에 대해 언론이 강하게 비판을 가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식약청이 늦게라도 책임있는 국가기관답게 제품의 유무해 여부를 공개토록 유도해 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제조업체 전체가 피해를 보는 일도 막아주어야 합니다. 언론도 소극적 보도자세에서 벗어나 공공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종왕〓이번 죽염파동과 관련한 보도들을 보면서 언론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어느 품목이 안전하고 어느 품목이 유해한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겠지요. 막연하게 ‘구운소금과 죽염은 먹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보도가 이루어짐으로써 소비자는 불안하고, 무해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는 억울하게 큰 피해를 보는 결과를 낳습니다.

▽김영석〓첫 보도를 보면 신문마다 ‘구운소금-죽염서 발암물질 검출’ ‘죽염서 다이옥신 다량 검출’ ‘구운소금-죽염에 다이옥신’ 등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고 있습니다. 신문제목이란 것이 제한된 글자수로 기사의 핵심을 짚어내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이것이 소비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킵니다. 이런 제목표현의 관행은 개선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적어도 ‘상당수 죽염’ 또는 ‘조사대상의 67%’ 식으로 표현해 ‘섭취해도 괜찮은 죽염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이용훈〓언론이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 및 의약품의 안전성에 관한 문제일수록 발표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정밀취재에 나서 기사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보도내용에 있어서도 오히려 신중해질 수 있지요.

▽김영석〓건강 식품 위생 등 과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분야에 대한 기자의 전문성 역시 과제라고 할 때 과학저널리즘에 대한 새로운 접근모델도 절실하게 요망됩니다. 단순히 발표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신뢰성을 검증하고 반론이나 이견을 아우를 수 있는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정리〓김종하기자 1101ha@donga.com

▼‘구운소금 기사’에 대한 本報 입장▼

‘구운소금 기사’에서 제품과 생산회사명을 이니셜처리한 것과 관련한 독자들의 항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제품명을 밝히지 않아 독자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문제 제품을 사먹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려는 자구노력을 방해했다는 일반 시민들의 지적이었습니다.

둘째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제품은 일부에 불과한데도 제품명을 밝히지 않아 업계 전체가 광범위한 피해를 보게 만들었다는 여타 생산회사들의 항의였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한 담당데스크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건은 신문사에서 제품명을 이니셜처리한 것이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니셜로 발표한 것이어서 신문사에서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설혹 식약청이 실명 발표를 했다 하더라도 신문사에서는 이니셜처리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독자들의 항의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유사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개인이익 침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 경향은 공익이 비록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개인의 인격권이나 사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다이옥신이 검출과 그 검출량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이 명확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식약청의 1차 조사결과만으로 그 명단을 공개할 경우 생산업체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동우 사회2부장 forum@donga.com

<사회〓김종완 ·본사 독자서비스센터장>

<참석자〓이용훈 위원장 (전 대법관)

이종왕 위원 (변호사)

김영석 위원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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