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부의 권위도 존중해야

  • 입력 2002년 9월 8일 18시 46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거나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서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원회가 ‘국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이러한 관행을 깨고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을 국감 증언대에 세우기로 했다. 국회 권위가 그런 방식으로 서게 될지는 의문이다.

국회의 권위가 중요하다면 헌법과 법률을 최종적으로 적용하고 인권의 보루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사법부의 권위도 대등하게 중요하다.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은 사법부 독립의 상징이자 판결을 하는 법관이요 재판장이다. 법관과 재판에 대한 국정감사는 헌법이 보장한 3권분립 정신에 어긋난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계류중인 재판이나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감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국회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주기 위한 견제장치이다. 국회 감사는 사법 행정에 대한 감사에 그쳐야 한다. 그렇다면 행정업무를 실무적으로 잘 아는 법원행정처장이나 헌재 사무처장이 국감장에서 답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재판에 관해서는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이 더 잘 알겠지만 재판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비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답변해줄 수도 없다.

외국에서도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장에 나와 증인선서를 하고 질의를 받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 제도 자체가 없다. 한국에서는 68년 조진만 대법원장과 70년 민복기 대법원장이 두 차례 국회에 출석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나 퇴임 또는 취임 인사를 겸해 간 것이었다. 유신 때 폐지됐던 국정감사가 81년 부활된 이후로 대법원장은 국감장에서 인사만 하고 퇴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하는 뜻에서 생긴 관행을 없애려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며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국회 법사위원장과 두 당 간사가 뚝딱 합의해 결정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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