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의 과학으로 본 세상]정부가 두뇌유출 지원?

  • 입력 2002년 9월 8일 17시 49분


며칠 전 기획예산처는 이공계 유학생 1000명에게 내년에 1인당 2만∼3만 달러씩 유학 경비 300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공계 기피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고 하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두뇌 유출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국내 이공계 대학은 교수와 실험장비가 늘어 연구 환경이 꽤 좋아졌다. 그러나 정작 연구를 도맡을 석박사 과정 학생은 모자라는 실정이다. 대학원마다 정원 미달 사태이고, 우수 학생은 훌쩍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나 명문대일수록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게다가 과학기술자 푸대접 때문에 학위를 받고도 귀국하지 않는 한국 유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유학생은 귀국을 선호해 모범생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국제경제연구원(IM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유출지수는 97년 6.94에서 2001년 4.11로 떨어져 미국(8.55)은 물론 일본(6.83) 대만(5.09) 중국(4.88)보다 두뇌 유출이 심각한 상태다.

미국은 2차 대전 때부터 엄청난 돈을 MIT 등 우수 이공계 대학에 쏟아 붓고 장학금과 영주권을 주며 전세계의 유학생과 고급 과학기술자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90년대에도 미국은 전문인 직업비자인 H1B비자 프로그램으로 중국 인도 등의 고급 두뇌 90만 명을 이주시켜 ‘실리콘 밸리’의 신화를 탄생시켰다. 미국은 다시 2000년 H1B비자를 11만5000명에서 19만5000명으로 늘렸다.

이에 맞서 각국은 두뇌 유출 막기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영국은 미국으로 건너간 두뇌를 귀국시키기 위해 박사후 연구원(포닥)의 봉급을 25% 올렸다. 또 2000년부터 5년 동안 2000만 파운드를 상금 성격의 연구비로 나눠주고 있다. 프랑스도 미국 유학생을 귀국시키기 위해 97년 이후 7000개의 연구교수 자리를 만들었다. 독일은 2000년 ‘그린 카드’제도를 만들었다. 2만 명의 고급인력을 동유럽 등으로부터 수혈하기 위해서다.

중국도 최근 세계 수준의 대학을 100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면서 세계 최대의 두뇌 유출국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노력 덕택에 요즘 중국의 경제특구 등에는 미국에 건너갔던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활력이 붙고 있다.

일본도 60년대 후반까지는 해외 유학을 장려했지만, 나카소네 전 총리의 주장으로 90년대 초반부터 10만 유학생 유치정책을 쓰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의 해외 유학생 장학금 지급은 국내 대학원을 궤멸시키는 두뇌 유출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내 대학원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외국의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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