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美교수 '北日정상회담' 전망 "北 변화유도엔 채찍 유효"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43분


빅터 차 교수
빅터 차 교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17일 방북은 여러 면에서 ‘양날의 칼(Double-edged Sword)’이다. 최근 아시아 외교의 전형이 된 ‘깜짝 발표’로 이뤄진 고이즈미 방북은 동북아에서 리더십을 강화하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를 반영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퇴임을 앞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 정책이 불투명한 기로에 서있고 미국이 대북(對北) 포용 정책에 대해 양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시점에서 껄끄러운 북한 문제를 꺼내든 것 같다. 이번 방북은 미국이 대북 강경노선에서 조금 물러나도록 설득하기 위한 또다른 동북아의 숨은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북-러 정상회담과 한국, 중국의 끈질긴 대북 설득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고이즈미 총리 방북은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포용의 밴드왜건(Engagement Bandwagon)’에 미국을 태우려는 역내 공동의 목소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쥔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방북의 성과를 이뤄내는데 조심해야 한다. 웃는 얼굴로 악수하는 수준의 성과는 워싱턴의 매파를 설득하는데 부족하다. 일본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납북 일본인 문제에 대한 북한의 양보다. 이것만 얻어내면 최소한 회담의 성공은 보장된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에 가장 의미있는 문제는 북한의 노동미사일 관련 문제다. 100개가 넘는 노동 미사일은 장거리 대포동 미사일과는 달리 북한에 실제로 배치돼 있다. 더구나 북한의 전략으로 유추해보건대 노동 미사일은 일본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는 미국과 일본이 대치 상태에 있는 남한을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일본이 북한을 상대로 미사일 문제를 논의하려면 외교적 승인과 현금 지원이 필요하다.

일본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간단히 악수만 나눈채 평양에서 돌아올 수는 없다. 2000년말 북-일 수교협상때 일본이 수교 합의안의 기본적 골격은 거의 완성 됐다고 믿었을 때 북한은 일본에 커다란 낭패를 안겨준 적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방북을 통해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

그러나 미사일 문제와 같은 의미있는 합의는 이번 회담에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으로부터 미미하고 상징적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현찰과 같은 ‘당근’을 제공하는 함정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같은 수준의 성과는 서울로부터는 환영을 받겠지만 워싱턴이나 도쿄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북-일 정상회담 이면에서는 더욱 심오하고 혼란스러운 문제가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고이즈미 총리에게 다가가려는 북한의 시도는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한 긍정적 진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워싱턴과 아시아 동맹국들간에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차를 넓히는 의도되지 않은 효과를 초래한다.

동맹국들에 고이즈미 총리 방북은 포용과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장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에는 강경노선의 효율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미국은 북한 정권을 ‘악’으로 규정하고 햇볕 정책 대신 매파 노선을 택함으로써 북한을 화해 분위기로 몰고갔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개방이 가속화될수록 미국과 아시아 동맹들간의 인식차는 더 커질 것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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