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11…삼칠일 (10)

  • 입력 2002년 8월 29일 18시 59분


배꽃 같던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삼단 같던 요내 머리 비사리춤이 다 되었네

백옥 같던 요내 손길 오리발이 다 되었네

열새 무명 반물 치마 눈물 씻기 다 젖었네

두 폭 붙이 행주치마 콧물 받기 다 젖었네

희향은 걷어올린 저고리 소매를 내리고 허리께에 동여매었던 치마자락도 풀고, 수건으로 온 얼굴의 땀을 닦고는 우선 용하의 밥상을 들고 부엌을 나왔다. 우근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직 자고 있는가보다, 모두들 저녁밥을 먹기 시작하면 젖을 주어야지, 나는 하루 종일 움직이고 있다, 그 사람에게 시집온 지 14년, 팽이처럼 뱅뱅뱅, 자기 몸을 팽이줄로 때리면서 뱅뱅뱅, 아침부터 밤까지 뱅뱅뱅, 눈이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이대로 죽는 날까지 뱅뱅뱅 뱅뱅뱅. 과거 내 말을 들어주었던 귀와 내 마음을 받아주었던 마음이 다른 여자쪽을 향하고 있다 해도, 내 손은 저 아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 있으며, 내 목소리는 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있고, 내 귀는 저 아이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있고, 내 마음은 저 아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있고, 내 젖가슴은 저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있으니.

용하만 다른 밥상머리에 정좌를 하고, 다른 식구들은 밥상을 빙 둘러앉았다. 용하가 계란찜에 한 점 떠 입에 넣는 것을 신호로 우철은 은어 꼬치를 잡고 소원은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떴다. 평소에는 밥을 먹으면서 말해서는 안 되지만, 삼칠일날의 특별한 음식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자기도 모르게 환성을 질렀다.

“맛있다. 역시 밀양 은어가 최고다” 우철이가 은어를 먹으면서 말했다.

“수박 냄새가 나재” 용하가 아버지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 쇠고기가 들어 있네” 소원이는 약간 옆으로 쏠린 눈으로 숟가락에 담겨진 쇠고기를 바라보고 있다.

“우근이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다. 우근이 삼칠일 날이니까”

“그래도 우근이는 한 입도 못 먹으니까 불쌍타” 소원이가 고개를 돌리고 벽에 기대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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