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죽음은 늘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3년 전 씨랜드 화재 참사 때 불길에 뛰어들어 어린 제자들을 구하고 숨진 김영재 교사, 지난해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사망한 이수현씨…. 소매치기 현장을 보고도 못본 채 지나갈 만큼 각박한 세상이 아닌가.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희생이다. 그런 의로운 죽음이 존경받고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일수록 건강하고 정의롭다. 지난해 의사당 총기난사사건으로 숨진 두 경호원을 국가가 앞장서서 보상하고 의사당 묘역에 안장한 미국의 예에서 보듯이 선진국들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예우한다.
▷보험회사들이 소매치기범을 잡으려다 차에 치여 숨진 고려대생 장세환씨의 보상금을 깎았다는 얘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내세운 이유가 길을 무단 횡단했기 때문이라니 더욱 그렇다. 평상시 같으면 또 모른다. 범인을 쫓는 긴급한 마당에 교통신호 살피고 횡단보도를 찾아 건너라면 이건 차라리 범인을 놔주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사회가 이렇게 냉혹하니 ‘괜히 의협심 내세웠다가는 나만 손해’라며 너도나도 몸을 사릴 수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각박한 계산법이다.
▷어떤 규정이든 그 근간은 건전한 상식이다. 정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마당에 교통규칙 위반 운운하며 책임을 떠넘긴다면 손가락질 받기 딱 알맞다. 졸지에 자식을 잃고 넋 놓은 부모 마음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중국음식점 배달원의 교통사고를 몇 푼 안 되는 합의금으로 끝내려 했다가 그 배달원이 ‘나홀로 소송’을 내 이기는 바람에 보험회사가 망신당한 게 불과 며칠 전 일이다. 돈에 죽고 돈에 산다는 보험회사지만 의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지켰으면 한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