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남자다운 게 뭔데?

  • 입력 2002년 8월 16일 19시 03분


‘정치는 축구의 점잖은 쌍둥이다…정당의 목표는 설득력 있는 경기를 통해 유권자라는 일반적 관중을 확보하는 데 있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축구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정의한 ‘남자’(디트리히 슈바니츠 저)라는 책을 읽은 것일까. 월드컵 성공 개최의 최대 수혜자는 정 의원이라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를 웃어넘기지 않고 조만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할 기세다. 15일엔 드디어 “출마하지 않으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의원은 너무 바쁜 나머지 책표지에 붙은 다음과 같은 부제를 못 본 듯하다.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남자’.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엔 공격적 특징이 있다. 원시시대부터 짐승을 쫓아 먹이를 잡고 적과 싸우는 역할을 해 왔다. 산업혁명과 영농기술의 발달 덕에 사냥할 필요가 없어지자 그 대신으로 들어선 것이 스포츠다. 달리기, 뒤쫓기, 덫 속에 골 넣기로 구성되는 축구야말로 사냥의 축약이다. 사회생물학 이론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의 테스토스테론을 지닌 동물이 동물의 왕국을 지배하듯, 인간도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지닌 남자가 인류를 지배해 왔다고 본다. 이 말이 오늘의 한국에 적용된다면 ‘남자다운’ 정 의원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을 호르몬의 작용으로만 파악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이다. 국어사전은 남자답다는 것을 ‘씩씩하고 강한 기개가 있다’고 정의한다. 그래서 남자에게 남자답지 못하다는 건 최대의 욕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런 남자다운 남자의 이미지와 폭력은 같은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 단숨에 국민을 휘어잡는 것도 허한 민심이 강한 지도자를 원할 때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학자 샬럿 후퍼는 저서 ‘남자다운 국가’에서 권력과 헤게모니에 대한 남성의 원초적 욕구가 국내에선 정복과 정쟁으로, 국경을 넘어서면 전쟁과 제국주의로 폭발된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우리는 한번 칼을 빼면 무라도 베어야 직성이 풀리는 무모한 남자다움이 오기(傲氣)정치를 낳는 것을 무수히 보아왔다. 정 의원의 발언이 책임과 신의, 기개의 남자다움이라면 모르되, 만일 그런 식의 ‘남자다운 정치’를 염두에 두었다면 그런 정치인은 지금도 너무나 많다. 한때 ‘영삼스럽다’ 또는 ‘오노스럽다’가 비아냥으로 쓰였듯 이제 ‘남자답다’가 ‘결과야(혹은 나라야) 어찌되든 하고 본다’는 식의 욕설로 자리잡을까 두렵다. 정 의원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남자다운 게 뭔가요?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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