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EXPO, 기회 놓쳐선 안된다

  • 입력 2002년 8월 11일 18시 36분


부산 아시아경기에 북한이 선수단은 물론 응원단까지 보낸다고 한다. 스포츠를 통해 남북이 신뢰의 기초를 다시 다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 아시아경기를 유치한 김영삼(金泳三) 정권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유치 과정에서 말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여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벌써 “남북 체육교류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산도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당시 야당으로 유치에 극히 냉소적이었던 김대중(金大中) 정권이 이제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됐다는 점이다. 95년 5월 유치가 결정됐을 때 야당 인사들은 “월드컵을 추진하는 마당에 아시아경기까지 치르려는 것은 부산에 대한 YS의 배려”라며 입을 삐쭉거렸었다.

우리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면서도 한 가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국운이 걸릴 만큼 큰 국제행사는 정권이 바뀌어도 성공적으로 치러져 왔다는 점이다. 일천한 민주주의 경험에 비춰볼 때 대단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유치한 88올림픽은 노태우(盧泰愚) 정권 때 성대히 치러져 탈냉전의 기초가 됐고, 노태우 정권이 유치한 대전 엑스포는 YS정권 때 꽃을 피웠으며, YS정권이 유치한 월드컵은 우리 모두가 보았듯이 DJ정권에서 그 빛나는 열매를 맺었다.

이런 ‘전통’은 실로 소중하다. 국가적 사업이 단절 없이 이뤄지느냐의 여부는 성숙한 민주정치의 척도다. 정치적 안정, 관용, 포용은 이런 미덕의 축적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DJ정권도 뭔가 하나쯤은 유치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2010년 세계박람회(2010 EXPO)만큼은 꼭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중요성이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세계박람회는 세계박람회기구(BIE)가 5년마다 여는 종합박람회로 인류 문명의 발전 성과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여주는 자리다. BIE의 유일한 ‘등록 박람회’이기도 해 ‘인정 박람회’였던 대전 엑스포보다 권위나 규모면에서 월등히 앞선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국제행사로 꼽히기도 한다.

1851년 파리에서 첫 세계박람회가 열린이래 개최국의 발전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이만큼 도움이 된 행사는 드물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를 계기로 미국의 자동차와 비행기가 실용화됐고, 1939년 뉴욕 박람회를 통해 텔레비전이 처음 소개됐다.

유치 신청 도시인 전남 여수는 관람객만 180여개국 3000만명에 이르고 생산유발 효과는 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7조원은 88올림픽과 이번 월드컵의 효과를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박람회 기간만 6개월이다.

여수는 상하이(上海), 모스크바와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최근 공개된 BIE의 중간 실사에서 이들 두 도시에 다소 뒤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치전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선점하려는 한중(韓中)간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 만약 여수가 패한다면 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헤아리기 어렵다. 상하이도 사정은 같아서 중국 정부까지 나서서 총력전을 펴고 있다. 득표를 위해 나이지리아 라오스 등 일부 BIE 회원국들에 많게는 1억달러 이상의 무상 경제원조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유치에 실패하면 그 어떤 실정(失政)보다도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임기 말,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한 알의 밀알을 심는 기분으로 최선을 다해 줬으면 한다. 야당도 협조해야 함은 물론이다.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12월 3일 모나코 BIE 총회까지는 4개월이 채 안 남았다.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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