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강미은/인터넷과 ´느슨한 결속´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15분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느슨한 결속의 힘’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집단 내부의 강한 결속보다 여러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느슨한 결속의 힘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외부인과의 느슨한 결속을 통해 집단 내에서는 알 수 없던 많은 정보를 얻게 되는데, 새로 직장을 구할 때 내부보다는 외부인들에게서 더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것이 한 예가 된다.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느슨한 결속이 힘을 발휘한다. 인터넷을 통한 느슨한 결속 속에서는 더 많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지리적 제약 없이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가를 찾기도 쉽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아시는 분?” 하고 질문을 던져 놓으면 된다. 인터넷에서는 또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비밀 유지의 위험 부담이 큰 문제에 대해서도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집단구성원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느슨하게 묶인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또 나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고민을 다른 사람들도 겪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안도감도 생기고 자신의 생각이나 상황이 정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현실 체크’도 된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토론방이나 게시판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올라오는 의견을 보고 ‘여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 떠오르거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예민한 문제를 토론 프로그램으로 다룰 때면 인터넷 게시판에는 논쟁이 불붙는다. 하루에 게시물이 몇천 건씩 올라오고 주장에 대한 답변, 반론, 재반박, 그 와중에 욕설까지 섞이면서 급기야는 ‘사이버 테러’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민주적 의견 교환 및 여론 수렴이 가능하리라는 전망과 실제 현실은 상당히 다르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내용을 살펴보면 의견의 ‘교환’이 아니라 자신의 원래 주장을 더 ‘강화’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토론 도중에 마음에 안 들면 흠집을 내고 무책임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상의 여론형성 과정에서는 목소리 큰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느슨한 결속’이 가져오는 폐해인 셈이다. 최근 국무총리 인준 과정이나 한나라당의 ‘이명박 파문’을 놓고 인터넷 상에서 논쟁이 활발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의견들을 무조건 여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이다.

강미은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mkang@sookmyu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