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안덕선/국제 협상에 전문가 배제하다니

  • 입력 2002년 7월 31일 18시 55분


중국과의 마늘협상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럽다. 속았다고 분해하는 농민들에게 관련 부처는 서로 잘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기 급급하고, 늘 그랬듯이 몇 명의 희생양을 찾아내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론의 관심이 식으면, 문제는 자연히 봉합될 것으로 당국자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하든 중국과의 마늘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정부의 미숙함은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마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무역이사회 회의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치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등 주요 의료 관련단체가 망라된 의료공동대책위원회의가 추천한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현지에 갔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6월 30일 마감된 각국의 양허요구안을 토대로 당사국들이 모여 보건의료를 비롯한 155개 분야의 서비스시장 개방 협상에 관한 논의와 이해 당사국간의 양자회담을 처음 시작하였다.

그러나 9·11사태 이후 해당국 ‘관용’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출입이 제한되어서 민간 여권을 소지하고 있던 필자는 우리 정부의 공식 출입요청 없이는 협상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현지 대표부 외교관들과의 동반 입장은 허락되는 상태여서 기대를 하였으나, 이 또한 실현되지 못했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애초부터 협조 의사가 없었고, 외교통상부는 복지부의 공식 추천이 없다며 필자를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제네바 대표부는 본국의 공식 훈령이 없다며 필자의 동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복지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의료계는 주무부서의 협조 거부와 해당 부처간의 떠넘기기로 회의 참가는커녕 전문가로서의 자문 자체를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해당 부처와 호흡을 같이 하는 다른 분야 민간단체 대표는 정부 공식 대표단 명단에 포함돼 회의장 참석이 허용되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무원은 설사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주요 민간단체의 대표라면 적어도 민간인 참관인으로라도 동반 입장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네바 대표부 직원이 단순히 동반만 하여도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부의 훈령 등을 내세운 당국자의 ‘원칙론’ 때문에 한국 의료계의 대표인 필자는 제네바까지 가서 장외에서 타국 대표들과 만나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에서 그 역할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왜 우리 정부 당국자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까지 하였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모든 국제 협상에 임하는 우리 대표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협상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유연한 자세로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투명성과 접근성은 WTO의 기본정신일 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단체에 요구되는 기본 덕목이다. 협상은 정부 대표가 한다. 그러나 그 전문성은 민간 분야의 자문을 기초로 하는 것임을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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