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정진영/통상협상 결과 관보에 게재해야

  • 입력 2002년 7월 24일 18시 51분


2년 전에 있었던 중국과의 마늘협상을 둘러싼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당시 협상에서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해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협상의 실패와 합의사실 은닉에 대한 책임문제, 외교통상부와 농림부 간의 책임공방, 농민단체 및 마늘농가들의 강력한 반발 등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번 파문이 발생하자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한덕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당시 농림부 차관보였던 서규룡 차관의 사퇴를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파문의 조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협상 책임자들을 문책하는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통상협상의 결과는 반드시 관보에 게재해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관보를 통해 공개되지 않은 협상결과는 법적인 효력을 갖지 못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오늘날 통상문제는 국민의 생활과 직결돼 있다. 통상협상의 결과를 정확히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국민은 자신도 모르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협상결과의 공개의무는 협상담당자들로 하여금 협상테이블에서 상대방에 대해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 국민적 반대를 이유로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통상문제의 해결은 세계무역기구(WTO) 및 국내의 통상법을 준수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항상 규칙에 기초한, 다자적 세계통상체제의 설립을 선호하고 그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무역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로서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과연 그러한 통상체제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는가.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취해졌는데도 중국의 보복위협에 우리는 쉽게 굴복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등에 대한 중국의 수입제한조치가 주는 피해가 중국산 마늘의 수입에 따른 피해보다 크다는 판단 하에 중국 조치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실리 추구라는 명분으로 쉽게 타협했다. 통상문제 해결에 있어서 세계통상규칙에 기초한 당당한 접근이 아쉽다.

셋째, 우리나라의 통상조직을 재검토해야 한다. 현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설립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체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다양한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부처 간의 입장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오늘날의 통상문제를 감당하기에 현재의 외교통상체제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통상전문인력의 육성과 집중도 어렵다. 외교부는 순환 보직제를 채택하고 있고 각 부처의 통상전문인력들은 가급적 자기 부처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을 따지는 일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기회를 우리 통상체제를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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