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23분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지음/301쪽 8000원 창작과비평사

성석제는 최근 한국 소설의 뚜렷한 개성 가운데 하나다. ‘성석제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특한 그의 화법은 이미 동업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평론가들 역시 ‘자폐적 독백’과 나르시시즘의 늪에 빠져있는 한국 문학의 침체와 부진을 타개할 유력한 대안으로 그의 작품을 자주 거론한다.

성석제 소설의 개성과 새로움은 단연 ‘문학적 관습이란 작위적’임을 과감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의 삐딱한 시선이 주로 머무는 곳은 통념으로 정착되고 자연스런 관습으로 굳어진 소설의 근대적 성격이다. 소설과 이야기, 리얼리즘적 재현과 순정한 허구 사이의 위계는 불편한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에게 소설은 진실한 재현이 아니라 그럴듯한 거짓말이고,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정처없는 떠돎이며, 엄숙한 계몽의 형식이라기보다 자유로운 즐김의 대상이다.

성석제는 (리얼리즘적 재현이 외면한) 이야기의 즐거움, 탐색의 서사가 놓쳐버린 무용한 탕진의 욕망을 한데 긁어 모아 소설적 에너지로 활용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자원은 전(傳)이나 행장(行狀) 같은 전통적 서사형식에서 깡패소설이나 무협지 같은 주변 장르에 이르기까지 무궁하다.

새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주변의 눈으로 중심을 보는 그의 방법론은 여전하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는 ‘욕탕의 여인들’처럼 여운을 남기는 ‘정통’ 소설도 들어있지만, 그의 장기가 가장 잘 발휘된 것은 역시 전통적인 형식에 기댄 작품들이다.

표제작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은 조금 모자라게 태어나 평생 동안 남에게 멸시만 받다가 종내 외롭게 죽어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 뒤에 차츰 밝혀지는 행적에 따르면 그는 타고난 바보가 아니라 상황의 아이러니에 의해 만들어진 바보일 뿐이다. 군청에서 ‘농가부채 탕감 촉구 전국농민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날, 그는 약속대로 경운기를 타고 백리길을 달려가 악천후 속에 홀로 고군분투하다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의 일, 궂은 일에는 언제나 앞장서는 인물, 있으나마나하면서도 또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바로 그였으니, ‘성실과 진정’으로 가득찬 이 의인은 일순 광야에서 외롭게 말하는 짜라투스트라에 비견되는 선지적 인간으로 비약한다.

이 소설집에는 그밖에도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특이한 인물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그들은 경국지남(傾國之男)이라는 말이 어울릴 절세 미남이거나(천하제일 남가이), 서음(書淫)이라 불릴 정도로 책에 몰두하는 사회 부적응자(책), 혹은 진정한 도박의 도리를 깨우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행을 감수하는 도박사이다.(꽃의 피, 피의 꽃)

이런 예외적 인물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일상적 가치의 범속함과 비루함을 날카롭게 환기시킨다. 소설의 화자 또한 결코 반복되지 않는 ‘인생의 일회성’ 속에서 ‘나름대로 극한까지 가본 사람’의 삶과 행동에 숨김없는 공감과 경외를 표시한다. 그러나 작가가 이 예외적 인물들만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거나 그들의 가치를 어떤 적극적 지향점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이 기괴한 인간들을 배척하지 않으며, 이 방외인들의 일탈 또한 일상적인 질서에 대한 공격적 풍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의 코드를 지니고 있는 그들은 사이좋게 공존한다. 책벌레 당숙은 도서관 사서이고, 천하제일의 미남은 평범한 농부로 살다 죽으며, 늙은 도박사는 조그만 절의 불목하니로 자족하는 것이다. 이 특이한 공존을 두고 작가의 의고(擬古)적 취향, 다시 말해 과거의 공동체적 삶을 이상적으로 미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처럼 화해로운 상호 의존이 결여된 미래란 또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이 소설집에서 성석제는 아주 매력적으로 생동하는 말의 향연을 주재한다. 상상을 절하는 이야기의 질주는 거침이 없고, 경묘하고 거침없는 달변의 화법은 완숙의 경지에 이르고 있으며, 대상의 핵심을 단숨에 포획하는 말의 자재한 부림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이 흥청거리는 말의 향연 뒤에는 간혹 어떤 침묵과 주저, 혹은 긴장의 공간이 감지되기도 한다. 그것은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이야기꾼 뒤에 자리잡은 자의식 강한 근대소설의 서술자이기도 하고, 유쾌한 주변인의 초상에 스며있는 생래적 낭만주의자의 면모이기도 하며, 또 깡패나 바보 이야기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사회비판적 일면이기도 하다. 사실 이 팽팽한 긴장이야말로 성석제 소설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진정석 문학평론가 jjss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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