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에베레스트]'청소원정대' 세계 최고봉 신비 살린다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32분


해발 8848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설산 연봉들 [사진=석동율기자]
해발 8848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설산 연봉들 [사진=석동율기자]

《북극, 남극과 함께 지구상의 3극(極)으로 일컬어지는 해발 8848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동쪽 부탄의 남체바르와(7756m)에서 네팔, 인도 등을 거쳐 서쪽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밧(8125m)에 이르는 장장 2400㎞의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군에서 가장 우뚝 서 있어 전문 산악인 이외 일반인들은 오를 수 없는 두려움과 신비의 땅이다.》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용하지 않지만, 에베레스트 만년설 만큼은 네팔 쿰부지역 히말라야 3000∼4000m급에 있는 고산마을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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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많이 끼는 우기(몬순 시즌)에 접어든 5월 중순의 남체바자르(3440m), 피에르체(4240m) 등 셰르파족의 거점마을. 아침나절 눈 앞에 가까이 다가선 아마다블람(6856m)과 좀 더 뒤쪽의 로체(8414m) 등의 설산 연봉 끝자락에 있는 에베레스트가 ‘하얀 머리’만을 살짝 드러냈다. 그러나 1시간도 못돼 빠른 속도로 밀려드는 설연(雪煙)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 오후 내내 구름 위로 숨어 버렸다.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 이상의 4개좌를 보유하고 있는 쿰부 히말라야 지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 등정이 첫 성공한 이래 8000m급 고봉에서는 산악인들의 희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빙하 지대의 크레바스에 빠지거나 눈사태로 인해 설산에 영원히 잠든 경우다.이들 숨진 산악인들의 ‘냉동 시체’들은 최근에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만 희생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역시 인간에 의해 끝임없이 훼손되어 왔다. 산악인들의 하산길로 많이 이용되는 에베레스트와 로체 사이의 사우스콜(7925m)에는 텐트 산소통 등 등산장비와 음식물이 마구 버려져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2∼3년전부터 ‘국제청소 원정대’의 쓰레기 수거가 본격화되고 있다.

네팔산악연맹의 타시 장부 셰르파(44) 회장은 “지난해에만 사우스콜에서 쓰레기를 4000㎏ 가량 회수해 왔지만 아직 1만5000㎏ 이상 남아있을 것”이라며 “고산증이 쉽게 나타나는 6000m 이상에서 청소를 하다보니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연맹측은 환경위원회를 두고 에베레스트 이외 네팔 서쪽 다울라기리에서도 청소등반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고 있다.

한국의 이상배(李相培·48)씨를 포함해 일본 중국 그루지야공화국 등의 산악인들도 지난해부터‘국제청소원정대’를 구성해 에베레스트 북면 등지에서 청소활동을 펴고 있다.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네팔 사가르마타 오염방지위원회 회원들이 에베레스트와 로체 사이의 사우스콜 (7925m)에서 산소통 캔 등 버려진 등산장비등을 수거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소각 처리하고 있다. [사진=석동율기자]

세계 최고봉 아래의 5000m급 빙하지대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지대는 전문 산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트래커들도 줄을 잇고 있어 이들이 마구 배출하는 쓰레기와 배설물 처리가 쿰부 히말라야지대의 최대 고민거리.

네팔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2만5880명이 쿰부지역 히말라야를 찾았으며, 이들이 버린 쓰레기중 7만1801㎏을 현지에서 소각처리했고 2만8148㎏은 헬기로 수거됐다.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사가르마타 오염방지위원회(SPCC)’는 96년부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자연보호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사가르마타는 네팔인들이 부르는 에베레스트의 현지어.

이 단체는 원정대가 갖고 들어온 쓰레기 목록을 일일이 확인한 뒤 한 명당 미화 2000∼4000달러의 예치금을 받아 청소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에서 기획업무를 맡고 있는 앙 축파 셰르파(26·여)는 “학생과 젊은 주민들이 트래킹 코스에서 연간 2, 3차례 청소하고 있지만 경비행기 이외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 수송이 원활하지 않다”고 힘든 사정을 설명했다.

에베레스트를 찾았던 산악인들도 이같은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 중 75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일본 여성산악인 준코 타웨이는 대표적인 인물.

그는 96년 쿰부 히말라야의 관문인 루클라(2840m) 산자락에 소각로를 설치해주었고, 요즘 사가르마타 오염방지위원회와 함께 환경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에베레스트 높이에 맞춰 8848 그루의 사과 묘목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하고, 현재 1000그루 가량이 배분한 상태다.

소각로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단 바하두르 빅(55)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네팔 산악을 살리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의 환경 의식도 아주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존엄하고 위대한 자연 중의 하나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의 발길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는 에베레스트. 그 신비의 영봉을 고귀하고 순백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은 이제 인간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쿰부히말라야(네팔)〓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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