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日 정치건달들의 책동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 입력 2002년 6월 14일 17시 28분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 우익 낭인의 행동과 사상을 중심으로/강창일 지음/409쪽 2만원 역사비평사

부끄럽지만 한국 학계에서 체계적인 학습을 거친 일본사 전공자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근자의 일이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많은 일본과 대조적이다. 두 나라의 힘과 의식의 차이겠지만 일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일본 또는 일본의 역사를 거론하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사와의 관련 속에서 일본근대사를 분석한 연구성과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평자는 이 책의 성과를 더욱 귀하게 여긴다.

이 책은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낭인들의 역사적 의미나 위상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행동양식과 사상을 분석한 글이다. 흔히 특별한 일 없이 빈둥빈둥 지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낭인’에 대한 일반적인 상(像)은 정치건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낭인(浪人·로닌)의 어원이 일본 고대율령제하에서 불법적으로 유랑하는 피지배집단을 지칭했던 데서 유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 낭인의 근대적 개념을 이처럼 부랑인, 건달의 범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메이지유신 후 중앙권력에서 소외된 사족출신들이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재야에서 그리고 조선을 비롯한 국외에서 군국주의적 대외침략논리를 전파하던 집단이었다. 또 모국의 침략정책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재외일본인 사회를 이끌고 일본정부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모국의 침략논리에 추수하는 현지의 친일집단을 양성, 후원하면서 적극적인 침략정책을 촉구한 집단이었다. 이런 낭인집단의 지도자그룹은 상당수준의 ‘학식과 식견’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 책은 ‘한일합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낭인들이 조선에서 집단적으로 보인 정치적 활동을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동학농민전쟁 때 동학농민군을 지원할 뜻을 갖기도 한 낭인단체인 천우협(天佑俠) 결성시기,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했던 낭인들의 활동, 그리고 조선 및 만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러(對露)전쟁론을 주창하면서 결성된 흑룡회(黑龍會)가 조선인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조종하면서 ‘한일합방’을 전개한 단계를 말한다.

이를 통해 일본낭인들이 갖고 있던 ‘아시아주의’ 논리에 따른 정치적 행위, 그리고 자료에서 추출한 인물들을 소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초기적 현상으로서 일본정부의 방침과 달리 ‘독자성’ 또는 마찰을 드러내기도 했던 천우협의 동학농민군에 대한 평가, 명성왕후 시해와 관련한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의 정치적 성향과 일본정부와의 사전모의 내용, 일진회와 흑룡회의 사상적 인간적 관계 등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흥미 있게 볼 만하다.

다만 일본정부 또는 권력 핵심그룹의 그것과 비교하여 일본낭인들이 갖는 정치적 사상적 범주에 대해 저자가 인식한 ‘독자성’의 정도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본낭인들의 기본적 존재양태는 침략의 첨병역할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것이었지 거시적인 침략정책 자체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까지 뿌리깊은 일본‘사회’의 극우적 정서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한국사 taeher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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