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선거 탈북 김용화씨 "아니, 투표를 왜 안합네까"

  • 입력 2002년 6월 12일 18시 26분


“월드컵 열기만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투표를 해야지요.”

탈북자 김용화(金龍華·49·경기 시흥시)씨는 누구보다 ‘6월 13일’을 기다려왔다.

1988년 6월 함경남도 단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지 14년, 95년 한국에 온 지 7년 만인 올해 4월 24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아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그리고 13일은 그 주민등록증으로 국민된 권리를 처음 행사하는 지방선거일이다.

이 한 장의 증명을 받기 위해 김씨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탈북한 뒤 중국에서 수차례의 한국 망명 요청도 물거품이 됐고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해 한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퇴거당하기도 했다.

중국 베트남 일본을 떠돌며 십여 차례나 밀입국자로 수감생활을 한 끝에 겨우 얻어낸 소중한 국적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유권자가 투표하러 가지 않을 거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저 같은 사람도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가슴이 뿌듯한데요.”

시흥의 한국농촌문화연구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씨는 13일 새벽 첫 차를 타고 투표소가 있는 서울 용산으로 갈 예정이다.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마땅하게 적을 주소가 없어 평소 도움을 받았던 지인의 용산구 남영동 주소를 기재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가장 먼저 투표를 하고 싶다.

“말로는 민주국가라고 하고, 정치인들에 대해 실망했다면서 정작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뭐라고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책임을 묻겠습니까. 투표율이 높아야 뽑힌 사람도 책임감을 더 느끼죠.”

김씨는 “내 조국, 내 땅”이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국민이 투표를 통해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서도 지방선거가 있지만 당에서 결정한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도 그는 말했다.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거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지역구 후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당을 보고 찍을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투표장에 들고 갈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만지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후보라도 찍어야죠. 진정으로 주민들을 대표할 사람, 주민들을 받들 사람, 그리고 상대적으로 정치적 야심이 작은 사람을 골라서 찍겠습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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