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경평(京平)축구

  • 입력 2002년 6월 7일 18시 40분


운동경기 가운데 팬들이 가장 열정적인 응원을 펴는 종목은 뭐니뭐니해도 축구인 것 같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월드컵만 봐도 그렇다. 경기장이나 거리의 전광판 앞에서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가 하늘을 찌른다. 일제하에서도 축구 열기는 요즘처럼 대단했다. 경성(서울)과 평양의 대표선수가 치르는 경평(京平)축구대회가 열리면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고 기생들은 영업을 포기했다던가. 두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 안은 응원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경기에서 이기면 거시적(擧市的)인 축하행사가 펼쳐져 양조장이나 술집에선 시민들에게 공짜 막걸리를 대기에 바빴다.

▷경평축구가 처음 열린 것은 1929년 10월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이었다. 사흘 동안 매일 7000명의 관중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는데 당시로는 대단한 인원이었다. 결과는 평양이 2승1무. 이듬해 11월에는 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에서 열려 경성이 2승1패로 이겼다. 이후 2년간 중단됐다가 33년 4월 평양 기림리운동장에서 재개돼 두 도시가 나란히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일제는 경평전 배후에 민족 공감대가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해 경기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로 몸을 부딪치며 한 핏줄임을 확인하는 경기라 그만큼 걱정도 컸던 것이다.

▷경평축구는 광복 이듬해인 46년 3월 서울운동장 경기까지 모두 8회에 걸쳐 23경기가 치러졌다. 그후 44년간 남북을 서로 오가는 축구교류는 끊겼다. 해외에서 청소년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이 한차례씩 만났을 뿐이다. 그러다가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교환경기’가 열려 국민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회성에 그쳤다. 그동안 정부 대한축구협회 서울시 등이 나서서 여러 차례 경평축구를 부활시키려 애썼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꼬였기 때문이다.

▷유럽 코리아재단이 9월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 대표팀간 축구경기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합의하고도결정적 순간에 꼬일 수 있는 남북관계의 특성상 미리 성사 여부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이루어져 경평축구 부활의 실마리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의 월드컵 열기를 북한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마당이다. 일제하 민족정기를 일깨웠던 축구가 이제는 통일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물을 가르는 축구공의 힘이 분단 장벽인들 못 가르겠는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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