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의료후진국?

  • 입력 2002년 5월 26일 17시 34분


16일 병원 감염 환자들이 국가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한데 이어 5회에 걸쳐 ‘의료시스템 긴급점검’ 기사를 연재하면서 독자들로부터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수십명은 병원에서 겪은 기막힌 사연을 제보했다. 미국에서 살다가 3년 전 귀국했다는 30대 여성은 “병원에 갈 때마다 짜증이 났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40대 주부는 “남편이 대학병원 교수인데 그의 고민을 이해할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반면 이번 시리즈 역시 대안을 제시하기엔 부족했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안도 이상론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사실 우리 의료시스템은 온갖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언뜻 보면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저수가 의료보험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의 산물이다. 1970년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남조선은 국민이 아파도 의료 혜택을 못받는 나라’라고 비난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전격적으로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당시 정부는 보험 수가를 원가의 50∼55%에서 정하고 의사들에게는 몇 년 뒤 수가를 인상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져 현재도 원가의 80%에 못미치고 있다. 대신 정부는 의사들이 불법적, 비정상적 진료로 수익을 보전하는 것을 유도 또는 묵인해 왔다.

이 와중에서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데도 적정 치료를 못받아 숨져갔다. 일부에서는 그 숫자가 6·25전쟁 때의 사망자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와도 맞물려 있다.

우리 사회는 사고로 한두 명이 숨져도 기사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목숨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의 생명이 사회적 관심의 최중심으로 와야 한다. 예산 배정에서도 여줄가리가 아니라 고갱이로 취급받아야 한다. 이것 없이는 의료 사고 문제의 해결이 난망하다.

미국에서는 예산의 20% 이상, 일본에서는 13.3%가 보건 의료분야에 투입되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0.27%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의료 과실을 미국 제1의 적으로 규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으며 신약 개발을 위해 게놈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관심도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그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신경써야 한다. 위정자들은 지난해부터 국민들 사이에 불고 있는 ‘건강 열풍’의 이면에는 ‘아프면 절딴난다’는 의식이 깔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