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불편한´ 스승의 날

  • 입력 2002년 5월 14일 17시 37분


온통 혼탁하고 삭막한 세상이지만 스승에 대한 추억을 머리에 떠올리면 어느새 마음이 맑아지고 훈훈해짐을 느낀다. 학창시절 스승의 말 한마디가 자기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은 경우도 많고 곤경에 처했을 때 스승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예도 적지 않다. 스승과 제자, 교사와 학생이라는 인연은 세속적인 인간 관계와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 교육은 인류 또는 민족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지혜와 가르침을 주고받는 숭고한 행위이며 그 중심에 스승이 있다. 스승의 은혜라는 말이 있듯이 스승의 역할은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전제 조건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교사가 학생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교육은 이뤄지기 어려우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요즘 교육의 위기는 이 같은 신뢰감을 상실한 데 기인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사를 믿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사들이 과거의 열정을 상실하고 심한 경우 패배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통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교사가 고소득 직종은 결코 아니며 일의 보람도 찾을 수 없다면 이들의 사기는 날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주인공인 교사들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하다고 한다. 오히려 이날 하루 동안 교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 교사들은 학부모들과의 접촉을 삼가야 하며 일부 학교는 휴교를 하기도 한다. 혹시라도 촌지 수수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학부모들도 스승의 날이 되면 학교를 찾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스승의 날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축하에 앞서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복잡하게 뒤엉킨 교육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조치가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일은 교사들로 하여금 예전의 자긍심과 신바람을 다시 살리도록 배려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이란 결국 교사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교사들에게 고마움과 신뢰를 표시하는 기념일로서의 스승의 날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면 조속히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각에선 스승의 날을 연말이나 학년이 끝나는 2월로 옮길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스승의 은혜에 감사를 표시하는 날로 운영해 나간다면 부작용도 줄어들 수 있으므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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