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강영안/반칙하는 당신, 레드카드!

  • 입력 2002년 5월 10일 18시 27분


월드컵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날수를 알려주는 전광판뿐만 아니라 지하철 차량에 장식된 요란한 그림도 경기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노풍(盧風)’에 휩싸여 온통 정치에 관심이 쏠렸던 탓인지 아직 한산한 듯하지만 6월 한 달은 아마도 월드컵 경기로 모두가 들떠 있을 터이고, 세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축구가 뭐기에 온 세계가 이처럼 야단인가 하겠지만, 세계 어디에서나 종교나 정치가 시들해진 지금 스포츠만이 사람들을 확실하게 열광시킨다.

가만 생각해 보면 20세기가 낳은 문화 현상 가운데 영화와 더불어 스포츠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

▼규칙 무시 편법 탈법 일삼아▼

박찬호나 박세리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올림픽 유치가 정치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스타들이 대중의 우상으로 부각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다. 하지만 스포츠가 이제는 대중에게 거의 하나의 새로운 종교가 된 듯하다.

스포츠는 과연 보는 이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긴장하게 만들며 때로는 분노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감정과 감정을 서로 이어주고 민족이 내부 결속을 하는 데도 스포츠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그러기에 한국과 일본,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과 프랑스처럼 한때 적대 관계를 경험한 나라끼리 맞붙을 때는 더 흥분한다. 스포츠는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며, 개인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이고, 엘리트적이기보다는 대중적이다.

하지만 물어보자. 무엇이 스포츠를 스포츠 되게 하는가. 스포츠는 무엇보다 기량을 서로 겨루는 경기다. 정치 토론이나 재판, 또는 학문적 토론에도 이런 요소가 있다.

하지만 겨루기는 역시 스포츠 고유의 특성이다. 축구나 농구처럼 두 편을 나누어 겨루기도 하고, 활쏘기나 사격처럼 결과를 가지고 겨루기도 한다. 겨루는 자는 반드시 이기고자 한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 이기고자 하는 욕심 없이 경기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수나 응원단도 감정에 쉽게 이끌릴 수 있다. 이기고자 하는 욕심을 통제하면서 경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규칙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경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포츠를 스포츠 되게 하는 것은 결국 규칙 따르기라고 할 수 있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냥 혼자서 몸을 움직이는 운동일 뿐 경기가 될 수 없다.

규칙은 스포츠를 가능케 하는 일종의 초월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떠난 스포츠는 스포츠일 수 없다. 예컨대 축구 규칙이 어느 정도 바뀔 수 있지만 그것을 송두리째 제거하면 축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 스포츠뿐이겠는가. 규칙은 우리의 삶 곳곳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규칙은 통제한다. 이것이 타인과 어울리는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규칙에 앞세우고, 규칙을 무시하는 빌미로 학연이나 지연을 이용한다. 그래서 경기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 불투명한 사회, ‘반칙 사회’가 된다. 반칙 사회는 산업이나 정치, 학문이나 예술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결국에는 모두가 고통을 당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게임을 하는 ‘페어플레이’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것이다. 규칙을 어길 때는 경고를 하거나 퇴장시켜야 한다.

▼극기 자기통제 정신 절실▼

그러나 페어플레이는 자동적으로 되지 않는다. 극기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다. 극기와 자기 통제의 정신은 스포츠에도 요구된다. 훈련을 받는 과정뿐만 아니라 경기 규칙을 지킬 때도 자제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반칙을 하게 되고 경기에서 탈락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페어플레이를 하자면 우리 자신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힘이 요구된다. 그래야 규칙을 따를 수 있다. 규칙이 통하지 않는 곳엔 불신과 반목이 있을 뿐 신뢰가 자리잡을 수 없다. 따라서 ‘신뢰 사회’를 만들자면 규칙 따르기를 무엇보다 연습해야 한다. 월드컵 경기를 통해 우리가 이 점을 배웠으면 좋겠다.

강영안 서강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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