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컨설턴트 ‘귀하신 몸’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22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지난달 말 35세의 조좌진(曺佐溱) 전 모니터컴퍼니 이사를 변화관리실장(상무)으로 영입했다.

이에 앞서 SK 구조조정본부는 2월 사업지원그룹 상무로 38세인 서성원(徐晟源) 전 맥킨지 어소시에이트 파트너를, 삼양사는 1월 임원급인 사업개발팀장에 33세인 이진용(李賑鏞) 전 모니터컴퍼니 팀장을 스카우트했다. 또 한국타이어는 이달 초 전략기획팀장(상무)에 맥킨지 출신의 이웅렬(李雄烈·41) 전 노보스 상무를 선임했다.

최근 대기업들이 30대 중·후반 또는 40대 초반 컨설턴트들을 상무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면서 영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기업에 뿌리내린 컨설팅 인맥〓대기업들이 컨설턴트들을 임원으로 본격 스카우트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경. 아직 역사가 길지 않지만 10여명은 대기업에서 이미 상당히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98년 10월 AT커니 팀장에서 SK글로벌로 자리를 옮긴 함윤성(咸胤成·41) 상무는 이 회사의 기업 비전 마련과 인터넷사업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유정준(兪柾準·40) SK㈜ 전무는 95년 맥킨지에서 LG그룹 컨설팅을 하다 LG건설에 입사했고 98년 다시 SK㈜로 옮겼다. 유 전무는 SK에서 2년만에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맥킨지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파트너가 된 김용성(金用盛·40)씨. 2000년 4월 두산의 벤처인큐베이팅 회사인 엔쉐이퍼 대표를 맡았다가 지난해 10월부터는 두산의 구조조정전문회사인 네오플럭스캐피탈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또 맥킨지와 앤더슨컨설팅 출신의 최병인(崔秉寅·40)씨는 2000년 5월부터 효성데이터시스템 대표로 일하고 있다.

LG텔레콤은 오규석(吳圭錫·39) 전략개발실장, 최동욱(崔棟旭·39) 마케팅실장, 김철수(金鐵洙·39) 동부사업본부장 등 상무 3명이 컨설팅 회사 출신이다.

주진형(朱鎭亨·43) 삼성증권 상무는 황영기(黃永基) 삼성증권 사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주 상무는 황 사장이 97년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전무)을 지낼 때 차장으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이재표(李載杓·43) 상무는 2000년 7월부터 한국타이어에서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을 지휘하고 있다.

▽30대에 대기업 임원이 되는 지름길〓최근 대기업 임원의 나이가 낮아지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는 30대나 40대 초반에 상무가 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그러나 컨설팅 회사 출신들은 대기업으로 옮기면서 십중팔구 30대에 임원이 된다. 기존 임원들보다 10년 이상 젊은 사례도 적지 않다.

오규석 최동욱 김철수 서성원 조좌진 상무와 이진용 팀장 등은 현재 30대. 함윤성 상무 등 나머지도 지금은 40대지만 스카우트 당시에는 대부분 30대였다.

최병인 대표와 김용성 대표는 38세에 대기업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됐고, 유정준 전무는 97년 LG건설에서 35세에 임원이 되는 등 상당수가 당시 그룹 안에서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대기업들이 일부 ‘위화감’이 생길 것을 걱정하면서도 높은 대우를 해주는 것은 컨설팅 회사의 보수 수준이 높기 때문.

컨설턴트 출신의 한 대기업 임원은 “대기업들이 주로 영입하려는 대상은 파트너 승진을 눈 앞에 둔 컨설턴트”라면서 “상무급 정도의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파트너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이직(移職)을 결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임원도 “사실 경제적 대가만 생각하면 컨설팅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낫다”면서 “책임 없는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일을 해보고 싶어 대기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왜 컨설턴트가 각광받는가〓요즘 대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5년, 10년 뒤 뭘 먹고 살 것인가’이다.

종전의 성장모델이 위기를 맞으면서 새로운 기업비전 전략 사업모델 등을 찾아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스카우트 대상 컨설턴트들이 대부분 경영전략 전문가이고 대기업에서 맡는 일도 주로 ‘전략’ 관련인 것은 이 때문. 또 컨설턴트 출신 대기업 임원들은 대부분 컨설팅회사에 근무할 때 해당 기업을 직접 컨설팅한 적이 있다. 즉 CEO의 시각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그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고급 인력인 셈.

미국에서는 컨설턴트가 아예 컨설팅을 담당했던 회사의 CEO로 옮겨가는 사례가 많다. IBM, 모건스탠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제록스, 델타항공 등 거대 기업의 CEO를 숱하게 배출한 맥킨지는 ‘세계 최대의 CEO 양성소’라고 불릴 정도다.

미국의 권위 있는 경제잡지 포천은 미국 기업 CEO의 양대 산맥으로 맥킨지와 GE를 꼽으면서 ‘맥킨지는 명문대 출신의 엄선된 엘리트 조직’, ‘GE는 하키팀과 비슷한 반(反)엘리트주의 조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의 컨설턴트 출신 대기업 임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명문대 출신이다. 또 상당수가 미국에서 유학, 영어 실력과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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