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선우/˝내 자식 내 맘대로˝

  • 입력 2002년 5월 5일 19시 02분


올해도 어린이날인 5일의 풍경은 예년과 비슷했다. 아이들과 함께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 놀이동산에 다녀오거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입장 순서를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던 부모가 많았다.

많은 부모들에게 어린이날이 그저 ‘고생하는 날’이 된 지는 오래다. 79년 전인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선생이 어린이날을 만든 취지와는 딴판이다. 부모의 소유물로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어린이’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정립하고 아동에게도 인권(人權)이 있음을 선언한 것이 그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아동 인권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방정환 선생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권 사각 지대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단지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한 살도 안 된 아이를 이불을 덮어씌워 숨지게 한 아버지, 얼마나 때렸는지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숨진 아이, 성적 학대 때문에 격리된 딸에게 ‘허전하다’며 빨리 돌아오라는 아버지까지…. 한국 아동 인권의 현실을 우려할 만 했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자식 사랑이 극단적인 부모와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지만 이들은 모두 ‘자식은 소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관이나 어린이 보호시설 관계자가 아동 학대를 신고받고 출동해서 가장 먼저 부모에게서 듣는 소리가 ‘당신이 뭔데 남의 집안 일에 참견하느냐’는 것이라고 한다. ‘내 자식을 내 맘대로 하는데 왜 끼어드느냐’는 식의 반응은 바로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소유 의식을 보여준다.

부모가 ‘내 자식 내 맘대로’라고 생각하는 한 아동 인권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는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의 참뜻을 새겨봤으면 좋겠다.

김선우기자 사회1부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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