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어린이에게 한 약속

  • 입력 2002년 5월 2일 18시 47분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수개월 동안 우리나라의 가입 자격을 심사했다. OECD의 회원 선정 절차는 까다롭기 그지없어 밀고 당기는 협상이 계속됐다. 국제투자 자본이동 금융시장위원회 등의 심사를 받을 때는 OECD 기준에 맞추기 위해 국내에 미칠 악영향을 감수하면서 정책을 바꿔야 했다. 환경위원회 심사만 예외적으로 단번에 끝났다. 심사 과정에 참여한 한 외교관은 심사관들이 유해물질 소음 진동에 이르기까지 선진국에도 드문 각종 환경관련법을 ‘완비’하고 있는 한국의 수준에 놀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사교클럽’이라고 불리는 OECD 회원국이 된 지 6년이나 지났으나 선진국은 아직은 목표일뿐이다. 선진국 관리를 놀라게 한 환경관련법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졌다면 월드컵이‘오염대회’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서울의 환경이 후진국 수준에서 맴돌지는 않을 것이다. 엊그제 이한동 국무총리가 몇몇 장관과 모여 발표한 어린이 보호육성 종합대책도 ‘법 따로, 현실 따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린이들이 법이 없어서 위험에 빠지고 어른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학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전국 초등학교와 유치원 주변에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 존)이란 게 있다. 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 지역에는 안전표지판과 신호등이 설치되고 자동차는 시속 30㎞ 이하로 서행해야 한다. 운전자들이 규정을 지키면 학교 주변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경찰청이 3월 한 달 동안 스쿨 존에서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단속한 결과 무려 2만3296건이 적발됐다. 교통사고로 75명이 다쳤으며 그중 초등학생 부상자가 61.3%인 46명이나 됐다. 그런데도 단속기간을 제외하면 학교 앞에서 경찰을 보기가 힘들다.

▷프랑스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주변에는 항상 경찰이 있다.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빠짐없이 경찰이 출동해 길을 건너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프랑스에 ‘경찰관 학교출동법’ 같은 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고 경찰은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 앞으로 출동한다. 어린이날 선물로 전국의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면 어떨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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