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김지원의 '꽃철에 보내는 팩스'

  • 입력 2002년 4월 5일 17시 38분


◇꽃철에 보내는 팩스/김지원 지음/413쪽/1만2000원 /작가정신

작가 김지원(60)의 ‘꽃철에 보내는 팩스’를 받았다.

꽃철에 보내는 작가 김지원의 팩스를 받았다, 라고 말하면 틀린다. 작가정신에서 출간된 그의 새 소설집 제목이니까.

출판사의 홍보자료를 뒤적이다, ‘작가는 조만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다’라는 문장에 눈이 멎었다. 오전 열한시였다. 전화를 걸었다. 빛나는 4월의 오전과 뉴욕 맨하탄의 저녁이 맞닿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작가의 목소리는 스무 살 처녀처럼 높이 튀었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아하하하… 하고 조약돌이 쏟아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우리식 계산법’으로, 서른 해를 산 뉴욕에서 왜 돌연 돌아오시려는 거죠?

“어디 간다는 느낌이 없어요.”

여기는 한국이 아닌 어디다, 라는 느낌도 없노라고 그는 말했다.

“신문 보면, 누가 어디를 여행하고 왔다, 라는 기사가 종종 실리데요, 그런데 이 일은 그정도 의미도 없어요. 평소 자주 왔다갔다 했고….”

어디로 이사한다는 계획은 있겠죠, 라고 물었다. 모친인 소설가 최정희(1906∼1990)가 살던 서울 정릉 아파트로 들어온다고 그는 말했다. 최정희와 납북된 파인 김동환(1901∼?) 사이의 두 딸 중 언니인 그는 고국에 들어올 때 마다 이 비워둔 집을 사용했다. 그와의 좋기로 이름난 동생 채원도 작가로 맹활약 중.

서른 해를 타국에서 산 작가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하게 자주 변하는 고국의 언어감각을 그는 작품 속에서 완벽히 따라가고 있다. 친구들과 자주 통화하나요? 작가는 네, 라고 짧게 끊어 대답했다. 고국 TV드라마도 보시나요? 네, 작가들 작품도? 네. 대답이 짧게 끊어졌다.

새로 나온 책으로 화제를 돌렸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작품집에서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심 인물이 없다. 큰 행위를 주위에 발사하는 ‘화살표’의 관계가 아니라 촘촘하게 작은 행위들을 엮어가는 망(網)의 관계랄까.

딜레탕트 문인 김발우와 그의 ‘주워온’ 조카 정숙이 등장하는 ‘바람결 머릿결’ 연작에서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여주인공 송자의 존재 확인을 그려내는 ‘집’연작에서도, 그의 세계는 언제나처럼 ‘부유하는 물방울처럼 떠도는 인물들, 현재시제와 과거시제의 뒤섞임, 서로 다른 시공간의 넘나듦, 자질구레하게까지 보이는 소소한 삽화들, 풍경들의 연속’(문학평론가 황도경)처럼 다가온다. 1997년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이 책에도 실린 ‘사랑의 예감’ 에서도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죠. 다들 서로 소소하게 영향을 받고, 규정지워지지 않은 가운데 순환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차원에서는 사람들이 각각 분리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다 하나로 맺어져 있는 다른 차원이 있을 거에요.”

갑자기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가 커다란 창고나 산골짝의 메아리처럼 텅텅 울렸다. 지구 반바퀴를 건너오면서 어떤 공간에서 알지못할 파형의 간섭(干涉)을 일으키고 있는 듯이.

지난해는 선친의 탄생 100주기였다. 파인은 어떤 모습으로 그에게 남아있을까.

“기억나는 것? 굉장히 낭만적인 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말도 못하게 사랑해요!”

어릴적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것인지, 지금 선친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것인지 선뜻 와닿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렇고요!”

(…).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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