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빵으로 푼 인류의 흥망성쇠 '빵의 역사'

  • 입력 2002년 3월 22일 17시 40분


화가 슈트라이히가 그린 독일의 첫 빵공장(1850년경)
화가 슈트라이히가 그린 독일의 첫 빵공장(1850년경)
◇빵의 역사/하인리히 E.야콥 지음 곽명단 임지원 옮김/640쪽 2만5000원

서양식 먹거리라는 관점을 떠나 빵을 생활이라는 범주에서 이해한다면 ‘빵은 한마디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기초다.’ 정치와 도덕, 종교와 신화, 전쟁과 평화의 기반이다.

이 책은 빵을 화두삼아 역사를 풀어 썼다. 최근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인간의 삶과 생활에 시선을 두고 서술한 역사서류 중 하나다.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 속에서 나온 고민의 산물이다. 저자인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1889∼1967)은 베를린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 철학 음악 역사를 공부했으며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1938년 4월, 나치가 빈을 급습해 오스트리아 지식인 150명을 체포했을 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다. 이후 아내와 미국인 삼촌 덕분에 미국 시민권을 얻어 1939년 석방됐지만, 그 때 경험은 인간 야콥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든다.

야콥은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역사가들처럼 역사는 합목적적인 인간의 의도대로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의지로 충만했었다. 그러나 집단 수용소에서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경험을 통해 깊은 회의에 빠진다. 인간이 역사의 주인일까? 역사는 인간이 바라는 대로 진행되는 것인가?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인간도 동물이나 별 다름없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그는 형이상학의 담론들을 걷어낸다. 2차 대전 직후의 혼돈속에서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켄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우리는 진짜 빵을 맛볼 수 없었다. 빵이라고 불리는 물건은 감잣가루, 콩, 톱밥의 혼합물이었다. 맛도 쇠맛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빵을 사랑했고 배급되기를 노심초사 기다렸다. 그 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다시는 진짜 빵을 맛볼 기회가 없이 죽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빵은 성스러운 것이다.”

로마도 빵으로 흥했고 빵으로 망했다. 로마 황제들은 빵 여신을 모시는 엘레우시스 교도였으며 로마시대 제빵사들은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황제는 빵의 무료 배급표를 나눠주는 제빵사 길드의 수장이었다. 로마인들은 귀족과 부자들이 대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한 라티푼디움 경제 체제로 농민들의 몰락을 불렀다. 농민의 몰락으로 빵이 부족하게 되었고 더 이상 수많은 속국들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 로마의 멸망을 가져왔다.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병사들의 위장이다’는 격언을 남긴 나폴레옹은 너무 빨리 진격한 나머지 빵을 실은 마차들이 미처 기병대를 따라 오지 못해 전쟁에서 졌다. 굶주린 병사들은 얼어 죽었으며 빵 한 입을 자치하기 위해 살인까지 벌였다. 빵을 위해 나폴레옹이 실제 이룩한 업적이라면 약 200만명의 프랑스인과 동맹국 및 적국 국민 약 600만명을 죽임으로써 빵 먹는 입을 크게 줄였으며 엄청나게 죽어간 이들의 시신이 유럽의 들판을 비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밀 생산지가 북부에 집중돼 있던 때문이었으며 히틀러는 인공 기근을 이용해 인종 말살을 꾀한 전무후무한 전략가였다고 한다.

책에는 신화, 화학, 농업, 종교, 경제, 정치, 법 등 인류 문명의 핵심 분야들이 망라돼 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이렇게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다는 것, 또 그 많은 자료를 하나의 관점으로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평전 시 소설 역사 희곡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40여종의 저서를 써 낸 저자의 지적 편력 덕택으로 보인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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