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안정효-이영미"영화-가요 '우리것'이 아쉬워요"

  • 입력 2002년 3월 22일 17시 40분


안정효 - 이영미
안정효 - 이영미
‘할리우드 키드’와 ‘가요 논객’의 만남.

번역가 겸 작가인 안정효씨(62)가 ‘전설의 시대’(들녘)를, 가요 평론가 이영미(42)씨가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황금가지)를 최근 발표했다. 이 두권의 책은 ‘대중문화 홍수시대’에 영화, 가요의 시대별 흐름을 짚은 텍스트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영화와 가요를 문학과 연계해 다양한 분석작업을 펼치고 있는 두사람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회〓안 선생님 책은 영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역사, 신화, 종교 등을 다각적으로 가미했더군요.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안〓내가 재미있으니까 기분 나는 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전설의…’는 20세기 영화사의 서문이라 할 수 있어요. 2권 ‘신화와 역사의 건널목’, 3권 ‘정복의 길’ 등 5권을 이미 써놓았고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예술과 인생, 종교 등을 주제로 총 40여권의 책을 낼 생각입니다.

▽이〓‘흥남부두…’는 98년 출간한 ‘한국대중가요사’(시공사)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책 후반부의 ‘서태지 이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대’에서 서태지 은퇴 후 ‘H.O.T’ 조성모 ‘god’ 등 가수들의 활동 부분을 추가했습니다.

▽사회〓이 선생님 책에 ‘트로트가 나왔을 당시 신세대 음악이었다’거나 ‘한국전쟁 직후 트로트와 엉뚱한 영어가요가 병존했다’는 얘기가 흥미롭던데요.

▽이〓‘윤심덕은 음치였다(?)’ ‘쌍팔년도식 사랑? 촌스럽게’ 등 소제목은 시대분위기에 맞게 제가 직접 뽑은 것입니다. 1952년 발표한 ‘샌프란시스코’라는 노래에는 ‘뷔너스 동상을 얼싸안고…’라는 가사가 있는데 아마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으니 샌프란시스코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해서 지어낸 것 같더군요.

▽안〓‘아리조나 카우보이’도 그래요. 아리조나는 사막 지역인데 카우보이가 있을 리 만무하죠. 텍사스면 또 모를까.

▽사회〓안 선생님은 영화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모으셨나요.

▽안〓열 살때부터 영화를 봤으니 50여년간의 기록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셈입니다. 수천편의 영화를 집에 보관하고 있으니 웬만한 자료는 내 주변에 다 갖췄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제목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다급해져요. 그래도 하루 평균 원고 15매 이상을 쓰려고 합니다.

▽이〓저는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 키드’였어요. 엄마 할머니와 함께 드라마를 즐겨보면서 탤런트 박근형 이낙훈씨가 ‘진짜 조선의 왕’인줄 알았었죠(웃음). 하지만 밤잠이 많은 탓에 ‘주말의 명화’를 못본 것이 아쉬워요. 만약 그때 영화를 즐겨봤다면 안 선생님처럼 ‘할리우드 키드’가 됐을 텐데.

▽사회〓두분 책 모두 영화나 음악이나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지적을 하셨던데요.

▽안〓옥스퍼드 영화 백과사전 번역을 하면서 인도 브라질 등 외국의 영화 정보는 몇장씩 수록돼 있는데 한국은 ‘스크린 쿼터 투쟁을 벌였다’는 딱 한 줄 뿐이더군요. 영화 ‘쉬리’는 할리우드, ‘무사’는 중국 스타일입니다. 한국 고유의 양식이 없다는 거죠. 이번 책에서 ‘춘향전’ ‘임꺽정’ 등에 대한 얘기를 넣은 것도 우리 영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근현대는 ‘이식(移植) 문화사’였어요. 트로트도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수십년이 흐르면서 토착화됐거든요. 문제는 그런 문화들이 팝 포크 등이 유입되면서 하층으로 밀려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 것을 갖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않았던 거죠. 한국 고유의 것은 신민요와 국악가요 정도일 뿐입니다. 90년대 이후 신해철 등 ‘한국적 정통’을 주장하는 가수들이 등장했지만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안〓영화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쉐인’을 보면 한명을 죽이기 위해 1시간 반동안 과정을 보여주는 반면 요즘은 3분만에 200명을 죽이잖아요. 옛날에는 작품 하나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데 요즘은 다 나온 얘기를 짜깁기해 새로운게 없어요. 철학적 고민 없이 손재주로 승부를 걸죠. 영화의 감정을 가슴에 안고 극장을 나서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쌓인 걸 털어버리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더군요.

▽이〓묵히고 뜸들이는 미덕이 사라졌음에 동감해요. 누군가 ‘인류가 점점 강해진다’고 하더군요. 갈수록 강도 높은 자극을 원한다는 거죠. 80년대는 대중영화는 거의 없었지만 작가들이 만든 영화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조폭 장르영화나 댄스음악의 유행이 한 시대를 장악하는 재미가 있긴 해요.

▽사회〓끝으로 두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안〓일단 20세기 영화사 정리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4개월에 한 권씩 쓰고 있으니 일흔살이 돼야 작업이 끝나겠네요. 그 때까지 건강해야 할텐데(웃음). 또 본업인 소설 창작도 계속 해야지요.

▽이〓한국예술연구소에서 ‘한국 현대예술사 대계’ 4권을 준비 중입니다. 이제는 TV 드라마를 연구하려는데 어려움이 많네요. 흑백 TV 시절의 방송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원로 PD나 작가를 찾아가 창고를 뒤져야할 판입니다.

▽안, 이〓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사회정리〓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 안정효

1941년 서울 출생으로 서강대 영문과 졸업후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 타임스’ 기자, 한국브리태니커 출판부장 등을 지냈다. 75년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 150여권을 번역했다. 83년 ‘실천문학’에 ‘하얀 전쟁’으로 등단했으며 ‘은마는 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착각’ ‘마늘의 끝’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문학번역을 강의하고 있다.

◆ 이영미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어린시절 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노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해 가요 및 연극 평론가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저술과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 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서태지와 꽃다지’ ‘한국 대중가요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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