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건영/강남 집값의 덫

  • 입력 2002년 3월 4일 18시 28분


요즘 서울 강남의 아파트 투기열풍이 뜨겁다. 이미 집값은 너무 올랐고, 단지마다 부녀회에서 가격담합을 하고 있고, 모델하우스 앞에는 ‘떴다방’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서울시는 그동안 눌러 두었던 도곡, 영동지역의 재건축 허가를 연이어 내주어 강남 집값에 불을 지르고 있다. 연초에 내놓은 양도세 중과세 등 부동산대책은 전혀 먹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아마도 강남 아파트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될 듯하다. 10평 남짓한 아파트가 수억원이란다. 웬만한 강남지역 아파트는 이제 평당 2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불과 몇달 사이에 강남지역에서만 수십조원의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강남은 이제 ‘특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신규 아파트 분양이 나오면 계속 집값이 꿈틀거릴 것이다.

▼70,80년대 악성거품과 비슷▼

1970년대 말과 80년대 말에도 집값이 급상승한 후 거품이 터지면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준 적이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부동산 버블경제의 후유증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 강남을 중심으로 나타난 집값 파동은 악성 거품이다. 투기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집값 잔치가 벌어졌는가. 정부의 주택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부동자금이 주택시장에 몰려들고, 원칙없는 재건축 정책은 허황한 개발이익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5개 저밀도단지에 몰린 돈만해도 15조원가량 되고 지난 한두 달 사이의 개발이익만도 수조원이나 된다.

땅은 도시계획에 따라 용적률이 정해지고 계획된다. 저밀도 아파트가 고밀도로 바뀌면 여기에서 개발이익이 발생한다. 그럼 누가 개발이익을 챙겼는가. 아마도 투기꾼들이 몇 차례 올린 뒤 먹고 되팔고 빠져나가고 하는 과정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강남 아파트단지마다 재건축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재건축 후의 터무니없이 과장된 가치를 기준으로 가격이 조작되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재건축이 추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현재 낡은 아파트를 재건축한다고 해도 추가 부담을 생각하면 타당성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타당성이 없다면 주변 집값을 올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아파트 주민들의 담합과 건설업자, 부동산업자들이 어울려 만들어 놓은 덫이다.

금년 초 양도세 중과, 그린벨트 내의 임대주택 건설 등을 포함한 정부의 투기억제책은 진단도 처방도 모두 헛짚고 말았다. 무엇보다 정부 차원에서 재건축의 원칙 제시가 절실하다. 저밀도지구 재건축이 10년을 표류하다가 선거 직전에 기형적인 모습으로 승인이 나왔다. 나머지도 민원에 밀려 아마 6개월 간격으로 승인이 날 모양인데 앞으로 수만 가구의 공사판이 강남에서 벌어질 것이다. 전세대란, 건자재 파동이 뒤따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어디 그 뿐인가. 크고 작은 단지들이 저마다 줄을 서 재건축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고밀도의 고층 재건축이 추진되면 강남지역은 교통과 인프라시설 등이 열악하고 조잡한 주거환경으로 변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건물의 수명을 100∼200년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20년 밖에 안된 멀쩡한 아파트를 허물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다. 현재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아파트는 강남, 서초구에만도 10만가구가 넘는다. 지나친 낭비다. 재건축은 가급적 억제하고 유지와 보수에 더 투자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재건축 줄이고 보수에 투자를▼

재건축은 도시계획 차원에서 정해진 용적률 범위 안에서만 허용해 주어야 한다. 도시공간 이용과 스카이라인은 공적 자산이다. 재건축으로 인한 개발이익은 당연히 사회에서 회수해 환경개선을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 요즘처럼 주상복합, 오피스텔, 재건축아파트 등이 제멋대로 하늘로 치솟을 경우 10년, 20년 후의 강남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앞으로 재건축은 서울 주변 수도권 도시로 확산될 것이다. 이에 대한 이들 도시의 대응은 ‘도시계획적으로’ 지극히 미숙하다. 서울에서 보는 것처럼 고층 고밀화된 투기잔치를 벌인다면 수도권은 초토화될 것이다. 서둘러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주택정책을 바로 세워 집값을 잡아야 한다. 강남의 재건축, 수도권의 난개발이 우리 도시를 망치고 있다면 과장일까.

이건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도시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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