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김상환/신용카드는 '악마의 돈'?

  • 입력 2002년 2월 22일 18시 18분


“어느 곳을 가도 Pass! ○○ 패스카드.” 이 광고문구처럼 신용카드는 여행객의 ‘패스’를 보장한다. 오지든 사막이든 이 세상 어디나 다 통한다는 것이 TV 광고에서 선전하는 신용카드의 힘이다.

앞으로 월드컵 축구장에서는 절묘한 ‘패스’가 골로 이어지는 광경이 수없이 연출될 텐데, 그것을 보러올 세계의 축구 팬들도 대부분 신용카드에 의존하는 여행객들일 것이다. 아울러 축제가 잘 되려면 말이 통해야 한다. 그들과 하나되어 외치려면 먼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월드컵이 열리면 축구공만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돈, 그리고 말도 이리저리 이동하고 교환된다. 축구공이 사람을 모은다면, 사람의 생각과 말도 서로 다른 관념을 끊임없이 모으고 잇고 연결하는 본성을 지녔다. 영어가 세계인들을 서로 통하게 한다면, 돈의 위력은 그 이상이다. 화폐경제가 활성화될수록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만남이 다양한 사람들, 서로 떨어져 있는 사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화폐는 時代의 사고방식 반영▼

여기서 특히 돈과 사고(思考) 사이의 유사성, 그리고 그 병행관계에 주목해보자. 추상적 사고의 기원은 화폐의 기원과 일치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화폐는 상이한 사물들이 서로 비교될 수 있는 어떤 공통의 성질을 나눠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곧 특수한 사물들에 보편적이고 동일한 개념적 속성이 들어 있다는 신념과 같다. 화폐나 개념이나 모두 일반적 등가물이고, 추상적 실체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카를 마르크스는 화폐를 거울에 비유한 적이 있다.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신들의 키를 비추어보고 서로 비교하기 위해 교환의 문맥으로부터 고립시켜놓은 상품이 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화폐는 상품의 거울이라기보다 역사적 현실 전체의 거울이다. 한 시대의 사고방식, 사회적 질서 모두가 화폐에 반영된다. 따라서 화폐의 형태가 바뀌면 시대가, 시대가 바뀌면 인간이 바뀐다.

이 점을 갈파한 고전은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1900)이다. 그 책에 따르면, 중세인은 집단과 지역에 묶여 있었다. 소유물과 소유자는 구분되지 않아서 경제적 행위는 인격성을 띠고 있었다. 이런 통일성은 근대로 들어오면서 깨져버린다. 근대사회에서는 공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소유물과 소유자가 분리된다. 주체와 객체가 서로 다른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전개되며, 각기 다양한 이합집산과 분화과정에 들어선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가 화폐경제의 도입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 지멜의 주장이다.

부정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화폐가 모든 종류의 가치 위에 군림하는 물신숭배 현상이다. 하지만 긍정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합리화 현상이다. 돈에 의해 매개될수록 사회적 관계는 점점 더 유동성과 상호의존성에 빠져들되 객관성을 띠게 된다. 반면 개인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적 내면성을 갖추게 된다. 이런 경향은 신용카드가 등장할 때 더욱 심화된다.

때문에 오늘날의 학자들, 가령 미국의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신용카드가 도입되는 시기를 탈(脫)근대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삼을 정도다. 그럼 근대와 탈근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근대가 돈이 금 같은 연구불변의 실체를 대신하는 기호로 이해되는 시대라면, 탈근대는 순수한 신용이 금의 자리에 놓이는 시대다.

최근 신용카드의 사용이 활성화되고 있다. 세원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과세 지표를 양성화하기 위한 정부의 판단과 의지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이야 어쨌든 교환과 결제방식의 변화는 정치경제학의 차원을 넘어 광범위한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공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까지, 의식의 차원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에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결국 행위 주체의 세계관과 도덕적 감수성을 새롭게 결정짓는 것이다.

▼잘쓰면 천당문 못쓰면 지옥문▼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변화를 거부할 때의 대가는 크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는 물론 요즘의 각종 게이트가 그것을 말해준다. 바로 이런 것들이 전근대적 감수성을 고수한 채 근대적 경제체제에 안주하려 했던 대가, 근대적 사고방식의 수준에서 탈근대적 질서를 계획했던 대가, 요컨대 불일치의 대가였다.

이것은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나 통한다고 신용카드를 아무 때나 내밀면 지옥문이 열릴 수 있다. 오로지 성숙한 도덕적 주최의 손에서만 신용카드는 “여기가 천당이에요”라고 할 수 있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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