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로비자금 둔갑한 공공기금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6분


국책은행이 대주주인 구조조정기금에서 기술개발에 쓰라고 지원한 돈을 사례비로 주고받은 공무원 등이 줄줄이 구속된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기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계 투자전문회사에 운용을 맡겼던 기금이 투자한 기업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돈에 꼬리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혈세나 다름없는 공적자금이 로비 자금으로 바뀌는 동안 기금운용을 감시해야 할 대주주와 정부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번에 문제가 된 구조조정기금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 재무구조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돕기 위해 국책은행 등이 2조원가량을 출자해 만든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당시 국내 업체에 맡길 경우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관리를 맡겼다. 외국기업에 맡겨야 공무원들이 불필요하게 참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과학기술부 특허청 등의 관련 공무원들이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되었다. 이는 공무원들이 아직도 불필요한 권한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벤처기업 지정을 비롯해 벤처정책을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한 이 같은 비리는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전에도 본란을 통해 지적했듯이 정부는 이제 벤처정책을 주관하고 독점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재정자금을 동원해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벤처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벤처기업에 관련된 비리와 게이트를 막으려면 정부가 주역이 된 벤처정책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검찰은 구조조정기금의 운용과정에 비리가 많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재발을 방지해야 할 것이지만 정부는 벤처정책의 구조적인 수술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벤처기업과 관련된 비리로 공무원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수배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관련자들의 구속이나 처벌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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