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DJ외교' 비용 너무 크다

  • 입력 2002년 2월 13일 18시 25분


안으로 내부갈등 속에 ‘퍼주기’란 비판을 받은 햇볕정책이 밖으로 부닥친 결과가 한미간 난조(亂調)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안팎으로 성한 구석이 없는 형국이다. 퍼주기 대북정책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미국의 위압적 자세 역시 못마땅하다. 그러나 한미관계에 난기류가 있다고 해서 양국관계를 들뜬 분위기에서 보아서는 도움될 일 하나 없다. 19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이 처리마감 시간인 양 조바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무슨 연유로 양국관계가 이렇게 꼬이게 됐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 설득논리 갖추고 있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한미간 이견으로 불거지게 된 한복판엔 대북 햇볕정책이 걸려 있다. 핵, 생물, 화학무기와 이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미국은 ‘긴박한 인식(sense of urge-ncy)’을 갖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정부는 햇볕정책에 매달리는 바람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미국처럼 심각하게 보지 않으려 한 것이 사실이다. 한미간 난조가 특히 부각된 까닭은 지난해 9·11 뉴욕테러에서 5000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미국의 격앙된 분위기에 있다. 미국은 지금 세계정치의 틀을 새로 짜겠다는 각오다.

여기서 생각을 돌려 스스로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의 개발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국제적인 확산 루트를 추적하고 있는가. 미국에 알려줄 정도의 정보는 얼마나 갖고 있는가. 둘째, 현재의 남북관계는 교류협력차원에서라도 우리가 바라는 만큼 진전되고 있는가. 실질적으로 서로 신뢰를 쌓아 가는 과정인가. 끝으로 내부적으로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확고한가. 그래서 햇볕정책은 대외적으로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대답이 ‘그렇다’면 50년 혈맹이라는 한미관계의 난조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논리로 미국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대답은 모두 ‘아니다’다. 한미간 시각차를 뒤엎을 만한 우리의 반박논리도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대통령의 ‘남북외교’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국방문때마다 햇볕정책을 설명했고 지지를 얻었다고 밝혀왔다. 남북한이 평화공존을 위해 상호 교류협력을 추진한다는 외교적 수사(修辭)에 반대할 나라가 있겠는가.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해서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 정부와 인식을 달리하는 이유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있다. 요약하자면 햇볕정책 때문에 대량살상무기위협이 가려져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하물며 북한과 인접한 중국 러시아 일본인들 이들 무기위협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 특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입장은 미국과 일치하고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국방문에 이은 부시 대통령의 중국방문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 외교에서 양지에만 몰입, 다른 편의 음지는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햇볕정책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엄연한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으려는 데서 안팎의 모든 불협화음이 비롯된 것이다. 정치, 군사부문은 차치하더라도 이산가족상봉이나 교류협력부문에서조차 북쪽은 남쪽의 생각이나 기대만큼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않았다. 남북관계에서 드러난 차이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인데도 이를 굳이 외면하고 희망과 기대만을 앞세워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성급한 기대만으로 뻔한 허상(虛像)을 포장할 수는 없다.

또 대통령의 ‘햇볕 제일주의’는 외교일선에 강박감을 주었고 대미외교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불렀다. ‘미국은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북한을 협상에 끌어내기 위해서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발언은 누구를 대변하자는 것인가. 미 당국자들은 ‘대단히 역효과적(very counterproductive)’이란 반응을 보였고 이어 한미난조로 나타났다.

▼외교 일선에 중압감 줘▼

김 대통령이 남북문제를 임기내에 처리해 보겠다고 너무 성급하게, 너무 큰 기대 속에, 너무 앞서나가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대북정책 내용과 추진속도에 미국의 불만표시가 한두번 있었던 것도 아닌데 지금 이렇게 휘둘릴 줄 왜 진작 내다보지 못했는가. 미국을 너그럽고 관대하다고만 생각해선 안된다. 햇볕정책이 역풍을 맞자 이번엔 부랴부랴 그 틈새를 막느라 진땀을 흘리는 형국이 됐으니 김 대통령의 남북외교는 과연 무엇인가. ‘외교대통령’은 이런 모습인가. 이 와중에서 미국과의 공조복원과 동맹관계를 강조하느라 또 다른 쪽으로 쏠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새로운 걱정이 든다. ‘햇볕 퍼주기’에 이어 이번엔 ‘동맹 퍼주기’인가. 김 대통령은 안팎으로 남북외교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최규철 기자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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