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법정스님 첫 수상집 '영혼의 모음' 재출간

  • 입력 2002년 2월 7일 17시 52분


때로는 낮은 음성으로 가만가만 얘기하는 말이 고함보다 날카롭게 심장을 찌른다.

법정(70·사진)스님의 에세이가 그렇다. 산사의 소슬바람같이 ‘맑고 향기로운’ 그의 산문은 사회 전체가 산업화와 능률과 실질의 구호속에 무한질주하던 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헛된 욕망과 집착을 질타하며 ‘무소유 정신’을 심었다.

최근 재출간된 산문집 ‘영혼의 모음’(샘터사)은 10월유신의 그림자가 사회를 짙게 내리누르던 1973년 처음 선을 보인 스님의 첫 수상집. 장장 30년만의 되돌아옴이다.

스님은 머릿글에서 ‘지금 읽어보면 치기 어린 글도 있고 격변하는 시대의 변천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소회를 표시한 뒤, 1976년 ‘무소유’를 출간할 때 이 책에서 일부를 가려 뽑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울림 역시 ‘본래 무일물(本來 無一物)’, 즉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이라는 ‘집착’에의 경고다.

스님은 어느날 도(盜)선생의 은밀한 방문을 받는다. 허름한 탁상시계가 없어진 것. 새 시계를 구하러 시계방 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 사내가 도둑맞은 그 시계를 가져와 값을 흥정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천원을 주고 내 시계를 사고 말았다.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고마웠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란 (…) 흐트러지려는 나를 내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탁상시계 이야기)

책읽기에 대한 그의 경건한 마음은 글 읽는 사람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어느 여름, 스님은 화엄경 십회향품(十廻向品)을 20여 회나 독송하면서 무더위를 잊는다.

“스스로 우러나서 한 일이라 환희로 충만할 수 있었다. 읽는다는 것은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 아닐까.” (그 여름에 읽은 책)

31년 전 쓰여진 ‘미리 쓰는 유서’ 도 눈길을 잡는다.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善意志)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그는 때로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줄곧 자책을 가져다 준 허물이란 무엇인가. 뜻밖에 그것은 어린 시절 장애인 엿장수의 엿가락 몇 개를 빼돌린 일이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은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果報)라 생각하면 견딜 만 한 것이다.” 그는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지체 할 것 없이 없애달라고 부탁한다. 몇 권의 책은 신문배달 소년에게 전해주길 당부한다.

“그리고 내생(來生)에도 한반도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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