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최승호/정부 부처 법률전문가를 키우자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03분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행정 각 부처에는 법률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우리나라 법치주의와 법치행정이 성숙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 외교부 재무부 해양부 환경부 등 어느 부처를 가더라도 그 부처 업무분야의 법률문제를 평생 다루는 법률전문가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각 부처에 법무담당관이라는 직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법률전문가가 아니다. 대체로 법대 출신이라고 해 임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법시험제도의 기형성으로 인해 법대 출신의 대부분, 특히 행정고시 응시자들일수록 법대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더욱이 법무담당관은 과장급 직위를 처음 맡은 사람이 잠시 거쳐가는 자리로 운용되고 있어 문제다.

특정 부처에 근무하면서 그 분야의 법에 관한 지식을 갖추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성형외과 전문병원에서 장기간 일하는 간호사가 미용수술 기술도 익힐 수 있다고 말하는 논리와 같다. 해부학 병리학 약리학 등 의학기초 분야 전반을 섭렵하지 않고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가 될 수 없듯이, 법률전문가도 법률 전반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지식 없이는 특정분야의 법률전문가가 될 수 없다.

최근 ‘작고 강한 나라’라는 말이 언론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나라로 흔히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가 예외없이 법률 분야에서 대단히 강하다는 점을 지적한 언론은 없었다. 네덜란드의 법률문화, 특히 국제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웨덴도 정부 부처에 많은 법률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미국 영국 등 영미법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대륙법 계통의 외교조직에도 평생 법률문제만 다루는 법률전문가들이 대거 자리잡고 있다. 태국 외교부 조약국에도 변호사 자격자가 50명가량 배치되어 있다.

법조인력 양성제도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 경제 사회적 수요를 만족시키고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선돼 나가야 한다. 이는 국가적 과제다. 필자가 근무하는 카자흐스탄에도 ‘베이커 앤드 매킨지’를 필두로 국제적으로 평판이 높은 미국 법무법인 12개, 영국 법무법인 5개, 캐나다 법무법인 3개가 진출해 있다.

정부가 우수한 법률전문가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 국무부 내 고액 연봉자 그룹의 30%가 법률고문실의 법률전문가들이다. 영국 외무부도 우리로 치면 일반 외무고시 출신들이 사무관 봉급을 받을 때 법률고문실에 신규 임용되는 법률전문가들은 서기관 수준의 봉급을 받는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질 좋은 법률전문가들을 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승호 주카자흐스탄 대사·외교부 조약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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