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이브 생 로랑

  • 입력 2002년 1월 24일 18시 22분


이브 생 로랑이 떠났다. 1962년 첫 번째 개인 컬렉션을 연 지 꼭 40년만이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패션계 최후의 낭만파’ ‘현대패션의 모차르트’…. 프랑스 르몽드지는 그의 은퇴를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의 종말’이라고 썼다. 그러기에 엊그제 열린 고별 패션쇼가 성황을 이뤘으리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생 로랑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고독하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평생을 아름다움과 화려함 속에서 살아온 생 로랑이 아닌가.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외롭게 했을까.

▷크리스티앙 디오르 패션점에 들어간 지 2년만인 21세 때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을 만큼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낸 생 로랑은 코코 샤넬과 함께 20세기 패션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다. 여성에게 ‘르 스모킹’으로 불리는 바지 정장을 처음 입힌 이가 생 로랑이다. 그 후에도 몬드리안 룩, 매니시 룩 등 만드는 것마다 대히트를 쳤다. 향수 광고에 나체로 직접 출연할 만큼 열정적이었던 생 로랑이다. 그랬기에 ‘샤넬이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생 로랑은 패션을 해방시켰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대미술관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고별 패션쇼가 열린 것도 그의 입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콧대 높기로 정평이 난 퐁피두센터도 이브 생 로랑 패션을 20세기 예술의 걸작으로 인정한 셈이 되니까. 이 패션쇼는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건물 전면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생중계되기까지 했다니 그를 향한 파리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이 놀랍다. 생 로랑은 우리나라로 치면 앙드레 김 정도 될 게다. 앙드레 김이 은퇴한다고 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난리’를 칠까.

▷그런데도 생 로랑은 고독하다고 한다. 명예에, 부(富)에, 뭇 여인의 사랑까지 거머쥐고도 왜 외롭다는 것일까.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가에게는 표현만이 인생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이 말과 생 로랑의 또 다른 한마디를 연결시키면 해답이 나올 것도 같다. “무질서와 퇴폐의 시대에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많은 슬픔을 느끼게 했다.” ‘거지패션’으로 불릴 만큼 이상한 옷차림, 우아함보다는 경제성을 더 따지는 새 트렌드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음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여성이여, 자신의 매력에 의지하라”는 그의 마지막 당부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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