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퇴임 고검장의 '쓴 소리'

  • 입력 2002년 1월 20일 18시 20분


심재륜(沈在淪) 전 부산고검장이 “검란(檢亂)의 원인과 배경은 거듭된 검찰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만큼 인사권자인 정부 최고책임자의 책임문제가 가장 크다고 보아야 한다”는 ‘쓴 소리’를 던지고 검찰을 떠났다. 검찰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내린 검찰 위기에 대한 ‘자가 진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무겁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 전 고검장이 겨냥한 정부 최고책임자는 물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다. 얼마 전 “검찰이 잘하지 못해 정부가 큰 피해를 본 측면이 있다”며 다른 해석을 했던 김 대통령이 그 퇴임사를 자신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생각할지, 아니면 충언으로 판단할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이 이번 진단을 입에 쓰다고 뱉어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심 전 고검장은 “전체 검사가 잘못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정부는 무관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발상은 국민으로 하여금 검찰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것으로서 결코 검찰을 살리는 길이 못 된다”고 현 시국에 대한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이 초래할 피해까지 적시했다.

김 대통령이 퇴임사를 쓰기는 하지만 약이 되는 고마운 충고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검찰이 살아날 수도 있고 계속 빈사상태에 머물 수도 있다. 또 다른 검찰 간부의 따끔한 퇴임사가 나올 수도 있고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김 대통령은 어제 정부의 고위 인사가 또다시 검찰의 책임론만을 강조할 정도로 정부 내에 ‘책임 회피’에 급급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근원이 자신임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사권자의 발상의 전환이 없이는 이명재(李明載)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으로 모처럼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검찰 쇄신 바람은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다.

검찰 또한 검찰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 왔다는 지적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뼈에 사무치도록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인사 특혜와 권력의 공유 내지 신분 상승을 위해 권력의 주변에서 무리를 지어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는 그의 술회는 검찰로서는 아프기는 하지만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지적이다.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할 검찰 고위층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반성과 변화를 이끄는 대신 소모적인 논란만 초래한다면 정권과 검찰의 불행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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