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침팬지는 갈등 풀줄 아는데…

  • 입력 2002년 1월 15일 19시 01분


한국 일본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올 초 침팬지의 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침팬지와 사람의 생명체 설계도를 열어 보니 염기서열은 98.77%가 같았다. 침팬지는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30여억년 전을 24시간 전이라고 보면, 사람과 침팬지가 한 몸에서 갈라진 600만년 전은 불과 3분 전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동물행동학자들은 침팬지를 거울 삼아 인간의 본성을 알고자 노력해왔다. 실제로 침팬지의 뇌 회로는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

하지만 초기 연구자들은 침팬지의 공격성과 잔혹성에 매우 실망했다. 야생의 침팬지들이 무리지어 다른 집단의 침팬지를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침팬지 수컷들은 홀로 된 다른 집단의 침팬지를 기습해 사지를 붙잡고 물어뜯고 돌로 쳐죽였다.

그래서 노벨상을 탄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는 1963년 ‘공격성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굶주림, 번식, 두려움, 공격성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근본 욕구라고 썼다. 그는 2차대전의 대학살도 인간 본성의 표출로 보았다. 탄자니아 곰비국립공원에 들어가 40년 동안 침팬지를 관찰한 제인 구달도 4개 침팬지 집단 가운데 2개가 동족 간의 계획적 전쟁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슬픈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킬러 원숭이’에게는 ‘공격성’과 더불어 ‘화해’의 본성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돼 새 희망을 주고 있다. 전세계 수십명의 동물행동학자들은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보고서 100개 이상을 묶어 얼마 전 ‘자연의 갈등 해소’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침팬지 등 영장류가 싸움 뒤 의식적인 키스, 껴안기, 섹스, 손잡기 등을 통해 화해를 모색하는 것을 밝혀낸 11건의 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670번에 걸친 짧은꼬리원숭이의 싸움을 관찰한 결과 싸움 직후 10분 동안 이들 사이의 ‘몸 접촉 행동’은 평소보다 크게 증가했다. 또 격렬하게 싸웠던 두 암수 침팬지가 10분 뒤 제3의 장소에서 껴않고 키스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사회적 동물인 침팬지들은 분쟁이 초래한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화해를 시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전쟁, 테러와 보복, 정치 싸움, 부부싸움, 자녀와의 갈등, 직장 내 불화 등 우리는 ‘일상화된 공격’에 익숙해져 산다. 하지만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생각하자. 그렇지 않다면 사회 직장 가정은 상처가 깊어져 어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침팬지가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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