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주부 김순희씨 30년만의 '외출'…상쾌한 변신

  • 입력 2002년 1월 15일 16시 44분


#프롤로그

아직은 꿈이 많던 스물 둘.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스물 넷에 결혼. 결혼하자마자 가진 첫 아이는 스물 다섯부터 ‘엄마’라는 호칭을 가져다 주었다. 그 때부터 ‘여자’로서 보다는 ‘엄마’로서 살아온 29년의 세월….

수민(30) 지민(25) 정민(22) 세 딸을 둔 김순희씨(54). 처녀 시절 그는 거리에 나가면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멋쟁이였다. 처녀 때 산 옷이 너무 많아 결혼하고 10년이 지날 때까지 새로 옷을 사지 않았을 정도.

엄마가 되고나서는 어쩌다 쇼핑을 나가도 아이들 옷에 눈길이 머물렀다. 여성복 코너에서 블라우스를 하나 집어들면 수민이 생각, 치마를 고르다가는 지민이 얼굴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 그랬다. 정민이를 대학에 보낼 때까지는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건강한 남편과 티없이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게 낙이었고 행복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주부 김순희’로서, ‘수민이 엄마’로서….

#스텝 1

딸들을 모두 성인으로 키워낸 지금. 이제 ‘수민이 엄마’에서 ‘김순희’로 돌아갈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잊어버린 정체성(Identity)을 되살린다는건 쉽지 않은 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홍지원PI연구소의 홍지원교수와 팀원들이 김씨의 집을 방문했다.

심리분석과 태도분석부터 시작했다. 2시간여에 걸쳐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 전날 미리 e메일로 주고받은 수십문항의 설문조사와 인터뷰 내용을 분석한 결과 김씨의 성격은 외향적이고 솔직한 편.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단순 명쾌한 것을 좋아한다. 홍교수는 “직장을 다녔으면 탁월한 관리자가 됐을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원래 성격을 많이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홍교수는 지적했다.

#스텝 2

계속해서 색상 체형 화장 머리 등의 스타일을 분석했다. 우선 색상 분석 결과 김씨에게는 강렬한 톤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면과 측면의 체형을 따져보니 큰 키와 반듯한 골격이 역시 ‘트래디셔널’한 스타일의 당당함에 딱 어울리는 체형이었다.

이어 화장대와 옷장을 점검했다. 김씨의 현재 스타일은 전형적인 주부형. 화장은 최대한 튀지않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편이고 외출복은 계절별로 서너벌 정도. 검은색, 녹색 계통의 얌전한 색깔에 편하고 단정한 스타일이 주종을 이뤘다.

화려한 원색의 옷도 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잘 입지 않는다. 김씨는 “젊었을 때는 원색의 옷도 즐겨 입었다”면서 “지금은 유행을 크게 타지 않고 무난한 색깔 위주로 고른다”고 말했다.

#스텝 3

종합적으로 분석된 김씨의 내면적 성격 특징에서 나타나는 현재 스타일은 ‘모던’ 스타일. 합리, 심플, 진실 등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김씨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트래디셔널’한 경향이 강했다. 즉 위엄이 있고 책임감 있는 커리어우먼의 스타일이었으나 그 쪽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편. 홍교수는 “분석 결과는 외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 태도 등 모든 면에 적용된다”고 설명.

#스텝 4

홍교수팀의 제안에 따라 스타일을 바꿔보는 단계. 먼저 미용실을 찾아 머리와 화장부터 손을 댔다.

트래디셔널한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전반적으로는 생머리에 가깝도록 하면서 웨이브를 살짝 넣어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미했다. 화장은 심플하고 자연스러운 톤을 기본으로 입술만 조금 강조했다. 머리와 화장을 고치는데만 3시간이 걸렸다.

이어 백화점에 들렀다. 홍교수팀이 골라낸 첫 번째 의상은 줄무늬가 살짝 들어간 회색 바지 정장. 김씨는 “결혼한 뒤로는 한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스타일”이라며 주저했다. “강하고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는 홍교수의 설명에 옷을 걸쳐본 김씨는 “의외로 잘 어울린다”며 대만족.

다음에는 컬러풀한 옷을 즐겨입던 젊은 시절을 되살려보기 위해 코발트블루 색상의 코트로 연출을 해봤다. 검은색 머플러까지 두르자 고상하면서도 활동적인 이미지가 살아났다. 홍교수는 “그동안 감춰졌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색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색상이 너무 튀는데”라면서도 마음에 드는 눈치.

여기에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구두, 단색과 체크형의 손가방을 곁들여 내면을 반영한 외면적 ‘정체성’을 되찾는 작업을 완료했다.

컨설팅 전후 모습

#에필로그

엄마에서 여자로 다시 돌아간 김씨를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남편은 “화장이 조금 짙은 느낌이 들지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촌평 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꾸미고 외출도 자주 하라는 격려도 곁들였다.

어릴 때 친구의 엄마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에 불만이 많았던 막내 정민. 평소에도 “젊게 꾸미고 다니라”며 엄마를 들볶던 정민은 “젊어 보여서 너무 좋다”고 박수를 쳤다.

김씨는 조만간 도예를 다시 시작할 작정이다. 한 때는 열심히 배워서 전시회까지 해보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그동안 외출할 때의 번거로움에, 집안 일 때문에 손을 놓았지만 늘 꿈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김씨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것들을 하나 하나 되살려내며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외모는 기본…액자-찻잔 등 생활소품까지 바꿔야 완성

PI컨설팅은 한 사람의 외모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그 사람의 정체성에 맞춰 개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커튼이나 액자 찻잔 슬리퍼같은 소품만 자신의 성향에 맞춰 바꿔도 일상 생활에서 한결 편안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다는게 홍교수팀의 지적.

김순희씨에게 추천된 액자 찻잔 커튼 향 등을 소개하고 이유를 알아본다.

액자- 김씨의 당당한 스타일에 맞는 은테 액자가 추천 1순위. 특별한 장식이 붙지 않아 심플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조금 강조하려면 나무테 액자도 좋다. 물론 심플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마찬가지.

찻잔- 김씨가 하루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가족을 모두 출근시킨 뒤 차를 마시면서 신문을 보는 때. 여유로운 분위기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김씨의 본래 성향인 강한 이미지를 보완해줄 수 있는 스타일을 찾았다. 잔과 받침대 테두리가 고급스럽고 편안한 문양으로 장식된 찻잔 세트가 선택됐다.

향- 가족을 위해 살면서 자신을 억누르다 보니 가끔씩 찾아오는 허무함. 얼마전 10년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의 얼굴에서 자신의 나이를 새삼 발견했을 때의 우울함은 비단 김씨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 연배의 여성이 공통적으로 느낄만한 것이다. 아로마테라피(향기 치료요법)는 심신이 피곤할 때 간편하게 기분을 바꿔줄 수 있는 방법.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라벤더향을 김씨에게 추천했다.

기타 커튼은 계절감이 확연히 나타나는 색상이 좋은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김씨가 꾸며놓은 실내는 전반적으로 색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했다. 카펫을 깐다면 역시 밝은 색상이 어울린다. 실내의 색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선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고흐의 작품을 한 점 정도 걸어놓는 것도 좋다고 홍교수팀은 제안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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