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민/서구문화중심주의

  • 입력 2001년 12월 9일 17시 49분


얼마 전 서울의 고급 호텔에서 ‘보졸레 누보’ 라는 프랑스 포도주가 올해 처음 출하된 것을 축하하는 파티 장면이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다. 이 술은 그 해에 수확된 포도로 빚어 오래 보존 않고 바로 그 해에 마시는 서민적 포도주다. 파리의 택시기사들이 즐기던 것인데 점차 유행을 타게 되었다고 한다. 11월 중순이 되면 파리의 작은 식당들은 ‘보졸레 누보 입하’ 라고 써 붙이고 손님을 유혹한다.

▷ 이 포도주의 으뜸가는 고객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일본인들이다. 엄청난 양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값싼 술을 고급술인양 대량으로 팔아먹을 수 있으니 프랑스인들로서는 신나는 일이다. 프랑스 언론은 일본의 보졸레 누보 파티를 신이 나서 취재 보도한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동양인들이 호텔에 모여, 장삿속의 판촉행사가 무슨 문화적 사건이라도 되는 양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기특하기 짝이 없다는 투의 보도다.

▷이와 똑같은 파티가 서울에서도 성황리에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문화 식민지의 징후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프랑스에서 수입된 것이고 그것의 출하를 축하한다고 호텔에서 법석을 떠는 것은 일본에서 수입된 유행이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은 약 10년 후 한국에서 반드시 유행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 것 같다. 이미 보졸레 누보 소비량이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고 한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개고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해 야만이니 뭐니 해가며 조롱하고 참견하는 것은 주제넘을 뿐 아니라 인류학이나 역사의 기본 상식이 없는 데서 나온 무식한 행동이고 발언이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존중심이 없는 이 태도의 배후에는 서구문화중심주의와 인종주의적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는 브리지트 바르도가 프랑스 극우파 정치인들과 친밀한 사이라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당하게 맞서지 않으면 당한다.

최 민 객원논설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미학)

chmin@knu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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