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바른생활賞’을 아세요?

올해는 1901년 노벨상이 제정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2월 8일부터 닷새 동안 의학 물리학 화학 경제학 문학 평화상의 순서로 6개 부문에 대한 시상식이 거행된다. 해마다 노벨상 시상식 하루 전날이면 스웨덴 의회에서는 ‘또 하나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이 수여된다.

▼바른삶 위해 제정된 ‘제2 노벨상’▼

1980년 스웨덴의 작가이자 우표 수집가가 설립한 바른생활재단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사회정의와 인권, 세계평화와 군축, 환경보전 등 지구와 인류의 안녕을 위해 힘써 온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인간은 모름지기 자연과 타인을 존중하는 바른 삶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바른생활상의 취지가 드러난다. 1986년 수상한 로버트 융크는 오스트리아 녹색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문명비평가로서 반핵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설립한 인도의 라다크 생태개발 그룹이 같은 해에 공동 수상한 단체다. 라다크는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 고원에 있는 토착 공동체다. 노르베리-호지는 스웨덴의 언어학자였으나 라다크의 전통문화에 매료돼 장기간 체류하면서 환경을 훼손하는 서구 산업사회의 대안을 모색했다. 1992년 황량한 자연조건 속에서도 평화롭고 건강한 삶을 누려온 라다크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오래된 미래’(녹색평론사)를 펴냈다.

1993년 수상자인 인도의 반다나 시바는 ‘살아남기’(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당대), ‘에코페미니즘’(창작과비평사)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환경운동가다.

에코페미니즘은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의 원인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제도에 있다고 전제한다. 또한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을 사회 내부의 주요한 지배 유형으로 본다. 요컨대 에코페미니즘은 지배 유형에서 여성과 자연의 동일성을 전제하고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을 동시에 추구한다. 시바는 현대과학이 여성과 자연에 대한 폭력의 근원이라고 전제하고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여성과 민중에 기반을 둔 풀뿌리 과학을 모색한다.

1997년에는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인 다카기 진자부로가 수상했다. ‘시민과학자로 살다’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이상 녹색평론사)으로 국내에 소개된 진자부로씨는 대학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반핵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기존의 과학연구 체제를 비판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공간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이른바 독립적인 과학자(independent scientist)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도 독일의 한스-페터 뒤르(87년), 미국의 새뮤얼 엡슈타인(98년)과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이 영예의 수상자 명단에 들어 있다.

바른생활상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권과 환경 보호 차원에서 현실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여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다.

올해 수상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상자 4명은 각각 이스라엘 브라질 베네수엘라 영국 국적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 증진에 공헌한 사람,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창시자가 포함돼 있다. 바른생활재단에서는 세계가 공포와 슬픔으로 떨고 있는 오늘날 테러를 몰아내는 유일한 무기는 정의와 화해이기 때문에 인권 신장에 노력한 이들을 수상자로 뽑았다고 밝혔다.

▼한국인 수상자 나오길 기대▼

바른생활상은 22회에 걸쳐 60여개 국가에서 80명 가까이 수상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레바논 이집트 등 3세계 국가들도 적잖게 들어 있다. 노벨상 총수상자 670여명의 대부분을 미국(220명) 영국(64명) 독일(62명)이 차지하고 아시아 국가는 23명에 불과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바른생활상의 수상자가 선진국과 후진국에 골고루 분포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바른생활상의 상금은 20만달러를 수상자들이 나눠 갖는다. 노벨상 수상자가 받는 액수(약 10억3500만원)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생활상은 제2의 노벨상으로 갈수록 성가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바른생활상을 받는 과학자가 한 명쯤 나올 때도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