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태’에 빠진 건강보험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건강보험의 혜택은 줄고 소비자 부담은 늘어나면서 국민 불만이 높아졌다. 건보의 재정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여기에 건강보험공단의 관리 소홀로 막대한 재정 손실을 입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에 ‘안티 국민건강보험 사이트’가 등장할 지경이니 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정부는 5월 지역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율을 28.1%에서 50%로 높이고 본인 부담금 인상, 진찰료 처방료 통합, 참조가격제 실시 등으로 올해 건보 적자액을 당초의 적자 예상액 4조2000억원에서 절반 이상 줄인 2조원 수준으로 묶기로 했다. 올 적자액 2조원에서 지난 해 남았던 적립금 9000여억원을 뺀 순적자 1조1000억원 상당은 금융권에서 빌린 뒤 2006년까지 순차적으로 갚아나가면서 흑자재정을 이뤄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금융권 차입금은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고 연말까지는 1조8000여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순적자액이 7000억원가량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이렇듯 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건강보험 재정안정화특별법 제정이 여야(與野)간 이견으로 표류하면서 지역건보에 지원하기로 했던 정부지원액 중 담배부담금 몫(10%)이 날아갔고, 참조가격제도 실시되지 못하는 등 정책이 혼선을 빚은 탓이다.

진찰료와 처방료를 통합하고 의사와 약사 1인당 환자 수에 따라 차등수가를 적용하는 등 의료공급자를 통제해 건보 지출을 억제하겠다던 재정대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정부는 보험가입자의 본인 부담률을 늘리는 대신 보험혜택은 줄여나가기로 했다. 내년 1월부터 종합감기약과 비타민제가, 4월부터 소화제, 영양제 등이 보험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지역 건보와 직장 건보의 재정 통합 문제가 하느니, 마느니, 연기하느니 등 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내년부터 보험료가 크게 오를 직장가입자들은 ‘우리만 봉이냐’며 불만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위기와 국민 불신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건보공단의 ‘도덕적 해이’다. 행정착오로 최소 638억원에서 최고 1000억원의 보험급여를 날리게 됐다고 하니 누군들 정부의 건보 행정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중태에 빠진 건보 행정에 대수술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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