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미국, 이성 잃었나 '도전 받는 오리엔탈리즘'

  • 입력 2001년 11월 23일 18시 30분


◇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 246쪽 9900원 김영사

팔레스타인 출신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66)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왜곡된 동양의 이미지로 ‘지적 폭력’을 일삼는 서구사회를 비판해온 대표적 학자다.

그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년) ‘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1993)를 출간한 이후 서구사회의 허구성과 지식인의 이중성을 비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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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9·11 테러사건 이후에는 미국의 진보잡지인 ‘Z매거진’과 이집트의 ‘알-아흐람’지 등을 통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중단을 촉구하고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일련의 글들을 발표했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은 테러사건 이후에 그가 발표한 ’끝이 없는 폭력의 뫼비우스띠’(9월 16일)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9월 17일) ’테러와 미국의 무지’(9월 27일) ’헌팅턴의 오류를 비판한다’(10월 22일) 등을 비롯해 방송 인터뷰 내용인 ’폭력의 악순환,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11월 11일) 등을 묶은 것이다. 이 글들에서 사이드 교수는 이번 테러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아랍 문제에 대한 서구 지식인들의 편견과 독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지적이 설득력을 발하는 것은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면서도 때로는 내면의 깊은 성찰을 토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사회에 비친 이슬람 교도들은 지구 저편에 사는 지극히 공격적이고 광신도적이며,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인의 손길로 다듬어진 언술체계일 뿐이다.

사이드 교수는 서구사회의 편견은 전적으로 아랍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작금의 충돌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무지의 충돌’이다. ‘문명의 충돌’을 말한 헌팅턴은 동서 냉전구조 이후에 나타나는 세계질서를 여러 문명간의 대립구조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사이드 교수는 이런 시각이 서구적인 문화지배론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들과는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이라는 의미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영제국 시대에서 작금의 ‘이슬람 때리기’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외교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계보로써 그들만의 도덕적 판단이자 그들만의 소설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지프 콘라드(Joseph Conrad)가 쓴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에 등장하는 쿠르츠가 ‘모든 벌레를 전멸시켜라’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 미국은 반테러리즘이라는 명분 아래 아랍 이슬람 교도에 대한 통제를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저자는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뒤, 모두가 하나같이 판에 박힌 분석과 해설만 내놓고 있다며 새롭고 다양한 시각이나 견해가 용납되지 않는 미국의 현실을 보고 낙담한다. 테러리즘이 반미주의와 동일어로 사용되고 있고, 미국을 비판하면 그것이 곧 비애국적인 짓이며, 결국에는 반미주의와 테러리즘에 동조하는 셈이 되는 풍조와 이에 따른 지식인의 일탈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 사이드 교수는 이처럼 비판적 자기성찰력을 상실한 미국 사회를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헌팅턴의 오류와 함께 서구적 입장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글을 써 온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V.S 네이폴의 비겁도 거침없이 질타한다. 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겉으로는 공정보도를 가장하면서도 아랍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공격한다. 이들은 지식인의 가면을 쓴 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과 사실을 임의로 왜곡함으로써 수많은 아랍인들에게 피와 눈물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지식인이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위해 불의에 항거하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처럼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사회적 불의에 동화된 음악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드 교수의 시각이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으로서 아랍세계에 팽배해 있는 가난, 무관심, 무지, 억압을 비롯해 아랍세계에서 용인되어온 광신주의나 테러 옹호론 등이 지닌 문제점에도 정당한 관심을 가질 것을 아랍인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즉 아랍 지식인들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부정부터 하는 과거의 이분법적 도그마 논리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의 무능력과 기회주의도 지적하고 있다.

근대 이후의 지식과 권력의 편성을 9·11 테러사건 이후의 국제정치와 미국의 세계정책에 투영시키는 저자의 해설과 정리는 지극히 명쾌하며,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현 시점에서 이슬람세계를 논하는 경우, 이 책을 피해서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며, 9·11 테러사태와 미국의 세계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일권 편역, 원제 ‘The Crisis of Orientalism’(2001)

김웅희(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사진)는 자신의 출세작인 ‘오리엔탈리즘’(1978년)에서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에 나타난 왜곡된 동양의 이미지”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에서 말하는 동양 또는 동양적인 것이란 실제의 동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서구인들의 편견과 왜곡이 빚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이드 교수는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의 ‘담론’개념을 차용해 “푸코가 이야기하는 ‘담론’이 광기와 비정상을 구분하고 처벌하기 위해 지식과 권력이 담합하여 만들어 낸 개념과 사고방식을 뜻하듯 오리엔탈리즘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왜곡, 지배해왔는가를 영문학을 비롯한 서양 학문의 사례를 들어가며 밝혔다. 그의 비판대상에는 단테에서부터 빅토르 위고와 찰스 디킨스, 심지어는 칼 마르크스까지 포함된다.

“그들(〓동양인)은 스스로를 표현할 수가 없다. 다른 누군가가 표현해 주어야만 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그에 대해 권위를 지니려는 서구의 스타일이라는 것. 사이드 교수가 ‘동양(실제의 동양)의 동양화(이념적 허상으로서의 동양 만들기)’라 부른 서구적 담론체계는 동양의 살아 있는 현실과는 무관하다. 후진성, 기괴성, 관능성, 정체성, 수동성처럼 동양적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들은 순전히 서구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소설’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 ‘소설’은 어느새 학문적 진리이자 건전한 상식으로서 권위를 지니고 통용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식민 지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이드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서양과 동양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문제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지배 피지배 관계에 수반되는 인식론적 왜곡과 전도를 비판할 수 있는 보편적 논의의 틀을 제공했다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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