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당신의 사랑은 현실일까 이상일까 '미란'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07분


◇ 미란/윤대녕 장편소설/326쪽 8500원 문학과지성사

윤대녕씨의 신작은 낯익다.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기시감. 윤씨 작품 특유의 낭만적 감수성 때문일까.

고독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성씨가 다른 두 명의 미란. 남자는 두 미란 사이를 방황한다. 첫 미란이 이상이라면 다른 미란은 현실이다. 첫 미란은 방황기의 신열 같은 사랑이었다. 그녀는 미래를 기약하고는 행적을 지운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몇 년 뒤, 남자는 변호사가 됐다. 그러나 생은 늘 허(虛)하다. 다른 미란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남자는 우물쭈물 결혼한다. 그러나 첫사랑이란 화인(火印) 같은 것. 열대 신혼지에서 첫 미란을 만난다. “두 사람이 어쩌면 하나의 존재일지 모른다”는 깨달음. 결국 서로의 등을 바라보던 3인의 관계는 첫 미란의 죽음을 향한다.

신작에서도 여전한 윤씨 특유의 이미지 문체는 매력적이다. 친구의 예언이나 가위눌린 꿈, 불쑥 튀어나오는 환상이 작품 분위기를 묘하게 만든다. 만남의 우연이 잦다는 흠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 만큼.

작가는 이번 작품에 “과감하게 멜로 구조를 도입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남자측의 관계맺기가 전작보다 적극적이다. 여자는 한밤의 사랑을 나눈 아침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시감의 결정적인 원인은 ‘여자 찾기’ 모티브에서 찾을 수 있다. 허무에 사로잡힌 남자는 늘 ‘먼곳’을 동경한다. 여자는 그의 주변을 잡힐 들 말 듯 맴돌다가 사라진다. 그 여인은 부재하면서 남자의 삶을 흔든다.

작가가 지향점을 잃은 현대인의 내면을 그리는데 애용해온 이런 스타일이 신작에서도 변주된다. 미란은, 예를들어 ‘추억의 아주 먼곳’(1996)의 유란과 이름만 닮은 것이 아니다.

혹시, 윤대녕의 많은 소설들이 한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근작 ‘사슴벌레여자’(2001)에서 보여준 작가의 실험성이 이런 우려를 경계하게 만든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