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에세이]여성의 적은 제도 아닌 고정관념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58분


여성에 관한 한 제도보다 무서운 것이 관념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도 지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95년 현대백화점 서울 무역센터점 ‘판매기획팀’에서 이벤트업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백화점의 판촉업무와 이벤트는 남자들의 성역이었다. 아니,‘남들이 다 남자들의 성역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겁도 났다. 사실 백화점이라는 곳이 1주일 단위로 행사가 바뀌고 이에 맞게 판촉·이벤트가 따라가 줘야 하므로 체력이 달리고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필요하기도 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백화점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마련돼 있는 곳이며 고객 또한 대부분 여성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판촉·이벤트 업무는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제도적’으로 여성은 판촉업무를 할 수 없게 막혀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 만든 ‘관념’만 극복하면 오히려 ‘해 볼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목련축제 장미축제 국화축제 등 계절에 따라 꽃을 테마로 한 행사는 백화점업계 최초의 조경 이벤트였고 무역점 앞 200여평 ‘만남의 광장’을 200여그루의 목련꽃 수만송이로 채운 것은 ‘감성 마케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무역점 시절 내가 시작한 반상회 참여 등 고객밀착 프로그램과 천호점 시절 만든 테마여행 등은 현재 현대백화점 모든 점포의 기본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벤트는 고객이 원하지만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콕 집어내야 한다. 미아점 10층의 ‘사파이어홀’을 이용해 영화 연극 오케스트라연주 등을 유치한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작품의 선정에는 흥행이나 유명세보다는 주요 타깃인 주부들의 감성을 우선했다. 행사가 끝난 후 참여했던 고객에게 일일이 이름을 써 감사편지를 보냈다. 거꾸로 좋은 공연을 했을 때는 고객이 감사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요즘은 한창 연말 이벤트를 준비중이다. 물리적인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힘쓰는 사람을 써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머리 가슴 열정으로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다. 때로 자신의 적(敵)은 사회의 벽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지레 짐작한 관념의 울타리일 수 있다.

(현대백화점 미아점 신희철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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