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술사학자 강우방교수 회갑맞아 '미술론집'출간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37분


“나는 매일 작품 주변을 맴돌며 그 작품이 형성하는 자장(磁場)을 가늠하고 즐거워한다. 한국 미술 속에 숨겨지고 함축된 내밀(內密)의 세계를 밝혀내는 남 모르는 회심의 순간!”

독자적인 연구 방법론, 깊이 있고 철학적인 통찰력, 빼어난 미문(美文) 등으로 한국 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온 미술사학자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사진). 그가 회갑(20일)을 맞아 한국미술론집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월간미술)을 출간한 데 이어 내년 1월 문화재 사진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강 교수는 이번 책에서 30여년 동안의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사의 걸작들을 알기 쉽게 소개했다. 빗살무늬토기, 고구려 불상, 불상의 광배, 백제금동대향로, 석굴암, 와당, 고려 부도, 추사 글씨 등등. 한국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간을 통해 슬쩍 슬쩍 비치는 강 교수의 지적 편력과 인문학적 예술적 감수성이 매력적이다.

지난해 여름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끝으로 30여년간 일해온 국립박물관을 떠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의 글이어서인지 새로운 변화의 모습도 담겨 있다. 강 교수는 “회갑을 맞아 지난날의 시행착오는 모두 접어두고 제2의 미술사 연구 인생을 모색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변화는 우선 과감함 자유분방함이다. 국립박물관 시절, 그의 눈이 정교하고 세밀했다면 이 책에서는 한국 미술의 장르 전반을 넘나들며 도전적이고 거침없는 시각을 보여준다. 불상의 광배를 장식하는 무늬는 불꽃모양의 화염(火焰)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의 몸이 발산하는 기와 생명을 불꽃처럼 표현한 광염(光焰)이라는 견해나, 와당의 귀면(鬼面)은 귀면이 아니라 용면(龍面)이라는 견해 등이 그렇다.

그는 고집스럽게 한국미술사에 빠져 살아온왔다. 서울대 독문과 시절, 문학과 그림 서예에 탐닉했지만 늘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고,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국보 사진집을 보면서 우리 문화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7년 대학 졸업 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편입했다. 하지만 문화재 현장에 대한 갈망으로 한 학기만 마치고 훌쩍 서울을 떠나 국립경주박물관에 취직했다. 천년 고도, 신라 불교미술의 보고인 경주에서 그는 독학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그렇게 30여년. 그에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문화재 현장과 실물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점. “예술의 세계란 일상적 차원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이므로 그 경지를 추체험해야 비로소 예술품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복원해낼 수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론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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